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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동양 문명은 왜 서양 문명에게 패배했는가?

by 시큼한 파인애플 2021. 4. 25.

 

우리가 사는 세계

 

 

사실 처음부터 동양 문명이 서양 문명에게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중세까지만 해도 동양 문명은 서양 문명을 압도했으며 서양의 중세는 암흑시기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발판이 되었는지 근대에 들어서 서양은 전세계를 재패하는 패권세력이 되었고 동양을 거꾸러뜨렸으며 그 축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이동했을 뿐 서양 세계의 힘은 현대에도 건재하다.

 

 

동양의 인구가 서양을 압도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것이다.

 

그렇다면 왜 동양 문명은 서양 문명에 못미쳤을까? 동양은 서양보다 인구도 많고 영토도 넓었으며 농업생산량도 풍족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나는 그 이유중 하나가 철학이라고 본다. 철학은 사람의 운영체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생각하는 체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본디 철학이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동양철학의 대부 공자

 

우선 우리가 서양철학을 본다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부터 근현대 서양철학까지 당신이 봐도 동양 철학이 이에 비빌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공자, 맹자같은 동양 철학자들은 철학이라 하기도 뭐한 도덕규범만 나열하는 것에 그쳤다. 그들은 관계론밖에 몰랐으며 사람과 사람사이, 물건과 물건 사이, 사람과 물건 사이의 관계에만 관심을 가졌고 그저 착하게 살라는 말만 앵무새마냥 반복했다. 

 

 

엠페도클레스는 4원소설을 주장했다.

 

그에 반해 서양의 철학자들은 존재론에 집중했으며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파고들었다. 고대의 철학만 비교해 봐도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은 물질이 4개의 원소로 이루어져있다는 주장인데 이는 정확도는 떨어지나 현대 화학과 같은 논리인 것이다. 4개의 원소가 어떤 비율로 있냐에 따라 다른 물질이 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동양에는 음양오행설이 있었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보이지만 실체는 비교하기도 민망한 사이비철학이다. 음양오행설은 원소론이 아니라 성질에 가까운 것이다. 나무는 상승 기운, 그리고 봄을 의미하고 불은 확산되는 기운, 흙은 수렴하고 발산하는 기운이며 쇠는 변형되는 기운, 물은 응축하는 기운 이렇게 성질을 대응시켜논 것일 뿐이다. 화수목금토 5개가 음양의 원리로 만물이 생성하고 소멸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원소론이 아니라 그저 순환을 이야기 한것이다. 중국의 각 왕조가 쇠퇴하고 새로운 왕조가 세워지는 것을 물은 불을 이기고 흙은 물을 이기는 이러한 순환에 빗댄 것이며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의 관계만 설정했을 뿐 4원소론과 비교할만한 것이 아니다. 

 

반면 서양 철학자들은 단순히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논리와 원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논리와 검증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형식 논리학이 발전했다. 반면 동아시아 철학자들은 이성과 감성을 구분하지 못했다. 설사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는 옳더라도 그것이 감정을 상하게한다면 거짓이라는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처럼 동아시아인들은 분석과 논리에 있어서 서양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동양인들의 철학은 전부 관계론이며 깊이가 없다. 철학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며 도덕과 윤리같은 규범론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양에는 철학은 없고 윤리만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동양음악이 서양의 음악이 들어올때까지 원시적인 단성음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서양인들은 발달된 분석력을 통해 화성음악을 만들었다. 화성음악은 쉽게 말하면 반주가 있는 음악이다. 동양의 전통음악중 화성음악이 있는가? 동양의 전통음악은 종묘제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악기는 많으나 조화가 없고 그냥 여러 소리가 섞인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솔직히 서양 음악이랑 비교도 안된다는 것을 잘 알것이다. 

결국 그런 동양 '전통' 음악은 우월한 서양 음악이 들어오며 사장되었고 현대 동양인들은 모두 서양의 화성학 위에 서있는 대중음악을 듣고 있다.

 

분석력에 있어서 서양에게 밀리니 과학, 발명에 있어서도 서양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동양의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화학, 나침반, 종이는 애초에 분석으로 만들어진것이 아니라 체득의 산물이다. 동양인들이 만든 황색화약은 조성비율이 명확히 규명된 것이 아니라 그냥 불멸의 비약을 만들기 위해 중국의 연금술사가 대충 물질들을 섞어보다가 만들어진 것이며 나침반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까운 것이다. 그저 자광석이 방위를 가르킨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며 그들이 만든 종이는 식물로 만든 섬유에 가까운 것이었다.

 

반면 서양의 발명품들은 고도의 분석력을 요하는 것이었으며 동양의 그것들과는 비교하기도 민망하다. 

 

"고대 그리스의 과학기술은" 국립중앙과학관서 특별전 | 연합뉴스 (yna.co.kr)

"고대 그리스의 과학기술은" 국립중앙과학관서 특별전 | 연합뉴스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2천500년 전 고대 그리스 시대의 과학기술이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다.

www.yna.co.kr

현대인도 놀라는 고대 발명품들 : 과학 : 미래&과학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증기기관, 계산기 등 3천년전에 어떻게 만들었을까라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고도의 발명품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려져있다. 

 

 

아프리카를 재패한 서양문명

 

고대 말고 근대로 갈수록 동양과 비교하기 점점 민망해진다. 근현대는 거의 서양의 시대라고 할정도로 서양문명이 전세계를 지배하던 시기였다. 또한 현대 문명은 그들이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신이 사용하는 전구, 세탁기, 근대적 수도시설, 기계식 혹은 전자시계, 볼펜,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컴퓨터, 핸드폰, 전기 등등 다 말하기도 어려운 우리 주변에 대부분의 물건들이 서양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민주주의 등의 근대적 제도, 서양식 의복, 서양식 음악 등등 솔직히 이부분은 더 말해봐야 의미가 없을것같다. 원래 동양의 것들은 모두 전통문화라는 것으로 약간이나마 남아있을뿐 근대화되면서 그 열등성 때문에 전부 폐기처리 되어버렸으며 빠짐없이 서양의 우월한 문물로 대체되었다. 

 

동아시아인들은 객관적인 근거보다는 감정적 소망을 바탕으로 동양문명이 열등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믿고싶지만 서양이 계속 우월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평등하지 않다는 근거가 된다. 

또한 자신들은 동양인이기때문에 서양이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기분나쁘다는 단순하고 어린아이같은 논리이다.

누구나 잘나갈때도 있고 못날때도 있으며 서양이 앞선것은 그런 것에 불과하는 식으로 폄야하기도 한다. 

현대 동양문명이 예외없이 근대 서양문명을 바탕으로 서있다는 것도 잊은채 말이다.

 

그들은 미리 동양문명이 못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근거를 찾아가는 식으로 확증편향에 완전히 중독되어있기때문에 대화가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과학도 아닌것에 의미부여를 하며 동양문명의 우수성을 주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몇가지 질문을 하면 그들은 바로 벙어리가 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기하학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과학은? 
르네상스 미술에 비견될만한 중국의 미술은? 

 

가끔 구장산술이나 주비산경같은 것을 운운하며 고대 중국의 수학적 우수성을 주장하기도 하나 애초에 고대 그리스와 500년이나 차이나는 데다가 그것들은 증명과정이 결여되어있기때문에 수학성을 인정받지 못하고있다.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

 

동양 국가들의 수학은 대수학에 편향되어있다. 왜냐하면 대수학이 현실에서 사용되는 수학이기 때문이다. 집을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하는데 쓰이는 것이 이 대수학이다. 

문제는 대수학만 알았기때문에 기하학이 발달하지 못했다. 주비산경이나 구장산술이니 원주율을 구했다느니 하며 동양수학을 과장하는 글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결정적인 한계가 있는데 바로 증명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동양철학의 결여점에서 봤듯이 여기서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증명에는 논리가 필요한데 그들은 아시다시피 논리가 없었기때문에 증명도 못했던 것이다.

동양의 수학적 발견은 위에서 말했던 체득이나 다름없는 과정을 통해서 구해진 것이다. 그냥 원 둘레를 측정해서 원주율을 구한 것일뿐 고대 그리스처럼 12각형이니 하며 수학적으로 구한 것이 아니다. 

 

동양수학에서는 기하학이 결여되어있었으며 그들이 처음 기하학을 접한 것은 1500년 후인 명나라시절 기하학 원론을 보고 처음 알게된 것이다. 

기하학은 마치 계속 말했던 철학과 같은 것이다. 기하학을 현실에서 쓰임이 없으니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철학이 현실에서 쓰임이 없으니 쓸모없다는 주장과 동일하다. 그리고 동양인들은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들의 철학도 수학도 모두 공통점을 보이는 것이다. 철학은 운영체제, 곧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표어문자는 하나의 문자가 하나의 단어에 대응되기 때문에 수많은 글자를 알아야하는 극도로 비효율적인 체계이다.

 

언어적으로도 서양인들은 분석력이 뛰어났기에 일찍이 자음과 모음을 분리해냈으나 동아시아인들은 3천년간 매우 비효율적인 표어문자를 사용했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조선 세종이 음소문자를 만들어냈다고 한들 이는 독자적으로 자음, 모음 체계를 구상해낸것이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온 서양의 음운론에 기초한 것으로 학자들의 연구결과 추정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 사라진 중세 암흑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서양이 동양보다 앞섰다.

동양이 발명했다는 것은 전부 발견이거나 기술일뿐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과학은 논리성이 필요한 학문이다.

동양문명에 과학은 없었고 기술만 있었다.

동양인들은 실생활에 필요한 것만 알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술을 발명했을 지언정 발전시키진 못했다.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원리를 알아야하는 것이다.

 

동양인들이 인쇄술을 발명했다느니 종이를 발명했다느니 하지만 그것에서 그칠뿐 발전은 미미했다.

서양인들은 대량인쇄술과 훨씬 품질 좋은 종이를 개발했다. 

당장 당신이 쓰고있는 것중에 동양인들이 발명한 것이 있는가? 전부 서양의 것일 뿐이다.

 

 

프로이센의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말했다. "동양에는 공간만 있고 시간은 없다."

 

동양인들은 그것이 현실에 쓸모있는 가에만 관심을 가졌으며 "왜?"라는 질문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비과학적 사고로 인해 동아시아 문명은 정체되었다.

아직도 철학이 실생활에서 쓰임이 없는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멍청한 동양인들이 많은 것을 보면 잘 알수있다. 

 

다시 말하지만 철학은 운영체제이다. 이성과 감성을 구분하여 냉철하게 사고해야 발전이 있는 것이다. 진실은 당신의 감정을 신경쓰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이 글을 보고 화낼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인 것이다. "너는 동양인 아니냐?", "왜 너만 잘난 듯이 잘난체하냐 너도 동양인이다."라고 말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인신공격일뿐 논리적인 반박이 아니다. 이성과 감성을 구분하지 못했던 지난 동양인들의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잘못을 알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발전할수 있는 것이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그들의 운영체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는가?

 

 

한국의 유일한 노벨상은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서 받은 노벨평화상이다.

 

언론을 보면 "국제 올림피아드에서는 항상 1위하는데 노벨상은 못따냐", "아시아의 교육은 암기만 있을뿐 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기사가 항상 올라온다. 이것은 모두 운영체제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최상위에 위치해있는 것을 볼수 있다.

 

동아시아의 교육은 시험을 위한 교육이다. 과거든 현재든 운영체제가 그대로기 때문에 똑같다. 과거시험에 미친 양반들이나 입시에 미친 한국인이나 뭔가 비슷해보이지 않는가? 그렇다. 똑같은 것이다.

 

이것은 모두 유교의 학문관 때문이다. 유교적 사고에서는 단순히 시험 점수를 높게 받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이고 시험을 잘봐서 출세하고 부모에게 효모하는 것이 유교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 그러니 서양의 학생들처럼 자신의 삶을 즐기거나 시험에 나오지 않는 학문의 본질이나 원리에 심취해서 즐기는 그런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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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OECD 최대라고 한들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거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공부는 시험을 위한 공부일뿐 거기서 끝이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보는 관점이 딱 공부나 일에 미친 개미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동양인들 그저 공돌이, 하급 노동자 취급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우리도 바뀌어야한다.

 

모든 사고가 동양적, 유교적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에서도 그 사고가 들어난다.

언론에서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그 이유가 웃기다. 개인의 깨달음으로 인한 즐거움같은 것이 아니라 노벨상을 따고 국위선양하는 그런것을 위한 것이다. 유교에서 중시하는 충(忠)이 여실히 들어난다.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되는 공동체주의로 포장된 유교 전통적 전체주의인 것이다.  여전히 현실에서 돈 많이 버는 일차원적인 것에 집착하여 서양의 우월한 사고방식에 진정으로 매력을 느낄 일은 없다. 그저 유교 전통적 전체주의하의 개인은 희생될 뿐이며 동양인들은 개인의 행복을 진정으로 추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인은 사고방식 자체가 관계론밖에 모르며 개인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속에 속함으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고방식 자체가 전체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이다. 누구보다 상하관계를 좋아하면서 정작 서양인이 자기보다 위에 있다는 것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제국의 전체주의는 싫어하면서 누구보다 전체주의적인 모순적인 면모도 이러한 이유에서 발생한다.

 

동양인이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 남에게 오지랖부리는 것 그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 아래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의 개인주의를 나쁜 것으로 봤으며 서양문명의 이기 위에 서있는 현대의 동양인들조차 이러한 생각을 하니 웃길 뿐이다.

 

동양인 Vs 서양인 사고방식 비교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동양인 Vs 서양인 사고방식 비교

동양인 Vs 서양인 사고방식 비교 언어는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습관,사고방식,문화에 지배를 받는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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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러한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차이가 왜 발생하는 지를 이제 이것을 통해 잘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청일전쟁은 유럽화에 실패한 병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꺾었다.

 

유교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는한 별로 의미없는 짓이다. 마치 중국이나 조선의 근대화운동을 보는 것 같다. 청나라의 양무운동을 보라. 중국제도하의 서양문물 도입을 추구했으나 처참하게 실패했다.

 

 

탈아입구를 주장한 후쿠자와 유키치

 

반면 일본은 탈아론을 중심으로 제도(=곧 정신)까지 전부 서양식으로 본받았으며 이렇게 한 탓에 미국한테 지기 전까지 아시아를 재패할 힘을 가졌다. 그나마 일본은 동양의 열등함을 인식하고 가장 유럽에 다가가려고한 동양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이이토코토리라고 하여 좋은 것은 부끄럼없이 가져온다는 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못난점을 알고 좋은 것을 과감히 가져오려고 하는 것이다. 

 

설사 중국이 GDP가 세계 2위라고 한들 중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의 힘은 막대한 인구에서 나오는 것이지 각각 인민의 우월한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과학 연구가 서양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이 집중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돈되는 기술뿐이다. 즉, 돈이 많은 지언정 서양의 문명적 우위는 계속된다.

 

 

 

CPU성능이 좋다고 한들 운영체제를 윈도우 XP로 쓴다면 제 힘을 발휘할 수가 없는 것처럼 사람도 똑같은 것이다.

 

하지만 일생을 동양에서 살아오면서 정립된 운영체제를 한순간에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논리적인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것을 옳다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한순간에 바뀌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노력을 해야 변화가 있을 것이다. 못난것을 인정하고 바꾸려고 노력해야 발전이 있다. 기분나쁘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진실을 보는 것이다.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면 발전은 없으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서양의 우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나 역시 한명의 동양인이며,
그저 동양의 발전을 원하는 동양인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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