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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경제

동양적 가치에 대한 편향적 시선의 수정

by 시큼한 파인애플 2021. 12. 22.

서양인들의 사상이 무조건적으로 우월하다고 환상을 가지고 동양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던 과거 글에 대해서 재고하고자 한다.

우선 서양인들의 가치가 다른 문화에 성공적으로 이식될 수 있는 가에 대해서 살펴봐야한다.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외무대신 시게미츠 마모루

한국과 일본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1945년의 제국의 항복 이후 미국인들에 의해 한반도 남부와 일본이 점령되고 미국인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다. 일찍이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부터 민주주의라고 하는 정치체제가 발생했지만 근대 이전 동양에서는 민주주의는 커녕 비슷한 체제를 가진 국가조차 존재한 적이 없다.

민심은 천심타령하면서 동양정치에서 백성을 생각했다고 하면서 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민심을 참칭해서 그저 왕조만 바뀌는걸 민주주의라고 말한다면 실제로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한 고대 유럽의 직접민주주의 국가들이 코웃음만 칠 것이다. 기본적으로 동양의 철학가들과 지도자들은 엘리트주의에 심취해있었고 무지한 백성들과 자신들을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가장 '민본'적이라고 보일 수 있는 맹자도 수양을 통해 그가 말하는 정의를 실천해야 '대인'인 것이지 모든 백성이 그렇다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서양은 시민혁명을 거쳐 몇백년에 걸쳐 민주주의가 성숙했으나 동양에서 유일하게 서구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이나 일본은 미국에 의해서 강제로 민주주의를 이식받은 것이며 그것이 아직 백년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 국가에서도 당연히 마찰이 발생했고 한국은 군부독재를 거쳐 실질적으로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은 1987년이래 3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일단 일본은 제국 시절부터 의회가 있어 1920년대에 절정을 맞았으나 군부의 폭주를 막지 못해 1930년 말부터 사실상의 군부독재 상태가 되었다. 패전 이후 세워진 체제에서 일본은 계속 민주주의가 유지되기는 했으나 좌파들의 극단적인 적색테러로 좌파가 완전히 몰락했고 55체제로 일컬어지는 기나긴 자민당 일당독재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사례로 인해서 완전히 버릇이 잘못 들었다. 돈만 줬더니 알아서 잘 큰 한국을 보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오판하고 결국 이는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많은 나라에서의 미국의 실패로 이어졌다.

한강의 기적

비서구권에서 가장 서구화됐다는 두 국가조차 이런데 민주주의라는 것이 다른 비서구 국가에서도 시행될 수 있겠는가?
서구적 가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자유주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다른 정치체제와 비교했을때 더 나은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급격한 경제발전은 절대 민주주의 하에서 이루어진것은 아니었다. 경제발전은 군부독재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군부독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아주 성공적인 나라이다. 군부독재가 딱 경제발전을 이루고 퇴출당했으니 그 이후의 사람들은 자유와 풍요를 모두 누리게 되었다. 군부독재가 계속되었다면 창의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권위적인 억압이 계속되어 아프리카 독재국가들처럼 쇠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동양인의 몸에 서양인의 정신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없을 리가 없다. 그 문제는 현재 아주 잘 표출되고 있다. 앞서 동양에서의 민주주의는 서양과 달리 성숙화 과정이 짧았고 급격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비성숙한 국민들에 의해서 서구적 가치는 잘못 받아들여졌다. 동양적, 전통적 가치를 모두 가치없는 것으로 보고 배제하고, 신 사대주의에 빠지며 자유에 수반되는 책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제한과 절제없는 자유에 대해서만 생각한 것이다.
전통이라는 것은 사실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기본적인 도덕규범이 이에 담겨져있다. 그것을 모두 부정하니 서양과 달리 책임도 없는 무근본의 자유로 이어진 것이다. 시민은 국가의 일원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한다. 그렇게 해야만 국가가 작동할 수 있다. 자유를 너무 강조하다보니 사람들은 국가를 잊고 자신만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는 것도, 남을 돕는 것도, 사실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손해라는 이유로 그러한 모든 책임조차 기피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인이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공동체로서의 국가또한 쇠퇴하게 된다. 왜냐면 국가라는 것은 개인이 각자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고 약간의 희생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국가는 죽게 된다.

어쩌면 프랑스 혁명때부터 자유주의라는 것은 존속할 수 없는 체제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봉건제도는 천년이 지나도 이어졌겠지만 자유주의는 결국 방종으로 이어져 개인이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잊고 몰락하게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 말고도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도 발생했다. 앞서 말했듯 민주주의라는 것이 더 나은 정치체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창 산업화가 진행중인 국가에 있어서는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 이끌어갈 강한 권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서 나라가 망하게 된다. 그렇다면 산업화가 완료된 국가에 있어서는? 사실 민주주의 문제는 비단 동양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기부터 우민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중우정치는 항상 문제되어왔다.
나는 민주주의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은 비이성적이며, 올바른 선택을 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기득권에게 휘둘려 민주가 시행되고 있다고 믿을뿐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반론은 평범한 유권자와의 대화라는 말이 있다.

비이성적인 국민들은 결국 감정에서 호소하는 비논리적인 좌파에 선동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좌파는 감성, 우파는 이성이라고 말하겠다. 감성과 이성은 절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 둘은 같은 선상에 놓여있지 않다. 감성은 비합리일 뿐이다. 다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행태를 보면 우파라고 한들 일반 국민들은 좌우 막론하고 그저 레밋과 같다. 위에서 말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사이비종교나 다름 없다.

사람들은 단순히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대체하는 것이 진보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그래서 기존의 전통을 무조건 부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주장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실패한 이후 공산주의는 실패한 사상이라는 낙인이 찍혀 새로운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여성주의이다. 좌파들은 여성주의를 새로운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성좌파의 삼위일체는 페미니즘, 생태주의, 채식주의이다. 공통점은 하나같이 위선과 허영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옳다고 자신들이 여기는 행위를 함으로서 남보다 더 우월하다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사실 공산주의와 이어져있다. 여성좌파는 공산주의의 새로운 모습이다. 전통과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여성도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아야한다는 이념하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사회주의적 정책을 주장하는 것이다. 여성을 위한다는 겉으로 보기에는 진보적으로 옳은 것으로 보이는 이념을 통해 다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결점으로 인해서 서양에서도 퍼지고 있다.

서양인들이 우리에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독을 풀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같은 서구의 가치가 성숙화되는 과정이 부재했던 동양에서는 이것이 잘못 이해되어 책임 없는 자유로 받아들여지고 사람들은 통제와 절제없이 행동하고 자신의 책임을 버리고 극단적 개인주의라는 서구가치의 왜곡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동양 전통적 가치의 역할을 다시금 체감하고 그에 대한 편향적 시선에 대해서 재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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