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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17

춘추 춘추(春秋), 말 그대로 봄과 가을이라는 뜻으로, 춘추시대에는 이 두개의 계절만을 구분했다. 춘추는 본래 노나라에서 쓰인 역사서였으나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진시황이 각국의 역사서를 모두 태워서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 지금 전해져오는 춘추는 공자가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편집하여 자신의 사적인 평가를 적은 것이다. 즉, 유교적 원리에 입각하여 역사를 서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적어야할 역사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서 내용을 수정했음으로 왜곡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으나 원래부터 비평의 성격으로 지어졌기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비판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원전인 춘추가 실전된 탓에 이것을 바탕으로 역사사의 춘추를 분석해야하여 아쉬운 것이다. 춘추의 주석서로는 공자의 제자인 좌구명이 지은 좌씨전이 있는.. 2022. 12. 24.
로마의 최후 로마 공화정은 결국 무너졌다. 카이사르는 경쟁자를 모두 물리치고 사실상의 황제가 되었으나 암살당했다. 그의 아들 아우구스투스는 마침내 황제가 되며 공화정을 끝냈다. 하지만 기원전 510년 로마 시민들이 그들의 폭군을 몰아낸 이래 거의 500년간 이어져온 로마의 공화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을 지키려는 저항은 거의 없었다. 이미 자유로운 농민들은 대지주들이 나일강 유역과 갈리아를 비롯한 비옥한 속주에서 노예를 이용해 경작하는 값싼 대량의 농작물과 경쟁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관직은 이 대지주들의 가족들이 독점했다. 즉, 중산층은 신체적으로는 노예에게, 지적으로는 귀족들에게 경쟁이 되지 않게 된것이다. 이에 따라 공화정의 몰락에 눈물을 흘릴 귀족과 노예 사이의 자유로운 시민 즉, 중간계층은 이미 몰락하고 없.. 2022. 5. 19.
황제(皇帝)국과 제후(諸侯)국의 예법 차이 황제(皇帝)국과 제후(諸侯)국의 예법 차이 제후: 왕(王),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 군주가 스스로를 칭할 때: 황제는 짐(朕)이라 한다. 제후는 짐을 칭할 수 없다. 제후는 고(孤), 과인(寡人) 등을 칭한다. 신민(臣民)이 군주를 칭할 때: 황제는 폐하(陛下)라 하며 제후는 전하(殿下)라 한다. 또한 황상, 주상, 금상 등 뒤에 상(上)이 붙는 표현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다. 군주의 명령: 황제의 명령은 조(詔)라고 하며 조에는 기관과 백성에 내리는 명령인 칙(勅), 제도를 고치거나 상벌을 내리는 제(制), 제후를 봉하는 책(策)의 3가지가 있다. 제후의 명령은 교(敎)를 쓴다. 후계자의 명칭: 황제는 태자(太子), 제후는 세자(世子)를 칭한다. 군주의 정부인을 칭할 때: .. 2021. 9. 12.
동양 문명은 왜 서양 문명에게 패배했는가? 사실 처음부터 동양 문명이 서양 문명에게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중세까지만 해도 동양 문명은 서양 문명을 압도했으며 서양의 중세는 암흑시기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발판이 되었는지 근대에 들어서 서양은 전세계를 재패하는 패권세력이 되었고 동양을 거꾸러뜨렸으며 그 축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이동했을 뿐 서양 세계의 힘은 현대에도 건재하다. 그렇다면 왜 동양 문명은 서양 문명에 못미쳤을까? 동양은 서양보다 인구도 많고 영토도 넓었으며 농업생산량도 풍족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나는 그 이유중 하나가 철학이라고 본다. 철학은 사람의 운영체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생각하는 체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본디 철학이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우선 우리가 서양.. 2021.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