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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춘추

by 시큼한 파인애플 2022. 12. 24.

춘추(春秋), 말 그대로 봄과 가을이라는 뜻으로, 춘추시대에는 이 두개의 계절만을 구분했다. 

 

춘추는 본래 노나라에서 쓰인 역사서였으나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진시황이 각국의 역사서를 모두 태워서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 

지금 전해져오는 춘추는 공자가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편집하여 자신의 사적인 평가를 적은 것이다. 즉, 유교적 원리에 입각하여 역사를 서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적어야할 역사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서 내용을 수정했음으로 왜곡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으나 원래부터 비평의 성격으로 지어졌기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비판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원전인 춘추가 실전된 탓에 이것을 바탕으로 역사사의 춘추를 분석해야하여 아쉬운 것이다. 

 

춘추의 주석서로는 공자의 제자인 좌구명이 지은 좌씨전이 있는데, 공자가 지은 춘추는 최대한 간결한 것을 최고로 치는 당대 기록방식에 입각하여 난해하기때문에 보통 주석을 통해서 이해한다. 

이외의 주석서로는 공양전과 곡량전이 있는데 이 세개를 합쳐서 3전이라고 부른다. 공양전은 문장의 의미를 잘 밝혔고, 곡량전은 명분을 잘 밝혔으며 좌씨전은 역사적 사실을 잘 밝혔다. 초기에는 이념적 부분을 중시한 공양전이 춘추의 주석중에서 좌씨전보다 더 높게 평가되었으나 후한, 서진 시대에 이르러 역사적 사실을 중점적으로 삼은 좌씨전이 독보적 지위를 획득한다. 이는 한나라 말기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에 더불어 유교적 명분의식이 약화되고 현실주의적 가치관이 강화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근대에 들어서 공양전을 중시하는 이들에 의해서 좌씨전의 위서설이 부각되었으나 현대에 이르러 여러 연구를 거쳐 위서설은 부정되고 있다. 

 

좌씨전은 단지 춘추의 내용을 해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춘추와 공양전, 곡량전이 애공 14년 애공이 기린을 잡았다는 서수획린의 기사에서 끝나는 것과 달리 애공 28년까지 기록하였다.

 

춘추는 노은공이 즉위한 기원전 722년에서 시작되는데 이때가 주나라 평왕 49년이었다.

공자가 이때부터 기록했는가는 공자만이 알겠지만 노은공 원년에 ()나라와 결맹을 맺었는데1) 여러 주석에 따르면 이때가 바로 제후들이 주나라 천자의 허가없이 사사로이 결맹(, 사맹) 맺은 시초이다. 주천자가 중심이 기존의 세계질서가 무너지고, 제후들이 일어나는 춘추시대가 시작되는 시발점이라고 보고 노은공을 시작으로 한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노은공은 서자였기 때문에 앞서 말한 춘추의 서술방식에 따라서 즉위 기사도 적지 않았다. 

 

 


1) 三月公及邾儀父盟于蔑
3월에 은공이 ()의부와 蔑에서 결맹하였다.
지금 魯나라 鄒縣이다. 蔑은 姑蔑로 魯나라 땅이다. 魯나라 卞縣 남쪽에 姑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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