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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경제

인터넷의 폐해

by 시큼한 파인애플 2021. 8. 12.

 

오늘날 우리는 인류역사상 유래없는 급격한 기술발전을 겪고있다. 지금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존재가 된 스마트폰은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겨우 10년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짧은 시간에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단순히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 등 다른 전자기기도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다. 인터넷과 개인용 컴퓨터가 대중화된 것은 한 2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디지털 세대인 것이다. 그 전의 사람들은 철저히 아날로그적으로 살아왔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폭발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21세기 대다수 사회문제의 원인은 청년들의 유아퇴행화 (tistory.com)

 

21세기 대다수 사회문제의 원인은 청년들의 유아퇴행화

요약: 분별없는 막대한 양의 정보의 유입과 쾌락문화에 중독되어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주장을 잃고 좀비, 유아와 같은 상태가 지속되어 편협하고 공격적으로 변하여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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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발전된 기술에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많은 글에서 거듭해서 언급했듯 압도적인 기술이 사람들을 종속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서 무엇이 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되었고 문명의 이기에 중독되어버렸다. 중독된 사람들은 내향적이고 소극적으로 변했으며 집에서만 틀어박히게 되었다. 헉슬리가 소설 "멋진 신세계"를 발표한 1932년에는 이건 그저 소설속에나 나오는 얘기였지만 그런 세계가 우리에게는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일본 애니메이션 시청 같은 것은 그 자체로 내향적인 것이다. 활동적인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고 그냥 집구석에 박혀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마이너한 것은 전부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있다. 주류 문화에서밀려난 사람들이 마이너한 것을 찾게되고 마이너한 것에는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기때문에 더 심해진다. 이런 것에 중독되면 사회성과 현실성을 잃어가며 내향적으로 변한다. 결국 현실을 살아가려는 노력이 없어지서 방구석외톨이가 되고 백수가 되면서 사회문제로 이어진다. 

인터넷, 스마트폰, 컴퓨터같은 집에 박혀서 하는 내향적인 것들이 사람들을 좀비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와는 거리가 먼 사회문제이다. 우리 주변에 널린 "중독되기 쉬운" 것들에 의해서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가는 것이다.

 

인터넷은 모두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정보중 전문가의 정확한 정보도 비전문가의 부정확한 정보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비전문가가 훨씬 많기때문에 후자가 더 많다. 일반 대중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분간해 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도 속는 경우도 많은데 일반인이라면 오죽하겠는가? 당신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거짓은 대놓고 "나 거짓이요"라고 하지 않는다. 거짓은 교묘하게 숨어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진실과 혼동하기 쉽다. 

 

인간의 성향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tistory.com)

 

인간의 성향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왼쪽은 2007년 폴란드 총선 결과이고 오른쪽은 2011년 폴란드 총선 결과이다. 유럽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하는 이라면 뭔가 보일것이다. 아직도 안보인다면... 구 독일제국 국경에 대입한 사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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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외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굳게 믿고 있는 우리의 자아는 사실은 굉장히 자유롭지 않다. 당신이 생각한 것은 사실은 당신이 보고 듣고 느낀 외부의 자극에 의해 지배된다. 우리의 자아는 외부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라고 굳게 믿고있지만 사실은 우리는 방금 생각한것도 잊어버릴정도로 불안정한 존재이고 그냥 뇌가 던져주는 생각을 자기가 하고있다고 착각할 뿐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뇌는 우리 자신이다. 그러나 뇌는 외부의 자극을 기계적으로 계산하는 일종의 생체컴퓨터일 뿐이다. 

 

당신이 어떤 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글를 계속 본다면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당신이 그걸 믿든 믿지 않든 무의식적으로 당신은 점점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당신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 당신은 그렇게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 후에 당신의 견해가 아주 복잡한 사고과정을 통해서 합리적으로 결정이 내려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진실인지 확인되지도 않은 것을 믿고 내린 결정을 자연스럽게 믿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당신에게 들어온 자극들에 의한 것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것에 대해서 이유를 말할 수 있는가? 그냥 좋아하는거라고?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견해가 형성된다는 좋은 예시이다. 당연히 확실히 이유를 말할 수 있는 것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게 훨씬 많다. 

당신이 이렇게 형성된 견해와 반대되는 정보를 접했을때 당신은 그걸 부정하려고 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견해와 부합하는 쪽의 정보만 보려하게 된다. 그렇게 당신의 견해와 같은 정보들만 계속 접하면서 당신의 견해는 점점 더 강해지고 확고해진다. 아주 별거 아닌 이유에서 시작된 사소한 선호가 결국 굳건한 생각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중은 지극히 감정적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이 아님에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그것을 비판하는 것에는 열심히 자신의 일처럼 저항하고 자발적으로 그것을 옹호하고 다니면서 자신의 견해를 퍼뜨리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에게 거슬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애초에 사실관계를 감정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니 대화를 할 기초적인 자세가 되지 않은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기초적인 논리구조도 없기때문에 인신공격 등의 논리적 오류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토론의 기본 전제조차 갖춰지지 않았으며 부정확한 정보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이들의 의견은 아주 하찮으며 의미가 없다. 이들에게 논쟁이란 상대가 지칠때까지 그저 욕설을 나열하는 것이다. 정말 이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애초에 논리의 기본요건조차 갇추지 못한 사람들하고 무슨 대화를 하라는 것이며 그들의 의견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대화라는 것은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맞춰져야지 비로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지않으면 인터넷에서의 키배가 으레 그렇듯 그냥 서로 욕설을 나열하면서 한쪽이 지쳐서 떠나야만 비로소 끝나게 되는 그런 일말의 의미도 없는 병신같은 대화가 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생각이 아주 하찮은 곳에서 시작되는 것을 아주 많이 봐왔다. 좀비들은 자기주장이 없어서 그저 인터넷에서 무슨 글을 보거나 댓글을 보고 그것을 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인터넷의 글 특성상 정확도가 낮거나 편향된 글인 경우가 많기때문에 이들은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만들어진 생각은 처음부터 쉽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글을 보면서 변할 수 있다. 사실을 확인할 능력이 없기때문에 그냥 자기가 봤을때 좋아보이는것은 그냥 믿는것이다. 그래서 그런이들은 주장의 근거 따위가 다 어디 커뮤니티 글이다. 그리고 인터넷의 등장으로 선동가들도 쉽고 빠르게 많은 사람을 선동할 수 있게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것에 대해 편향적인 글이나 기사를 작성하기도 한다. 이런 편향적인 글을 좀비들이 보고 그대로 선동당하는 것이다.

 

동양인들은 인구밀도가 높아서 경쟁이 심하기때문에 사람들이 열등감이 심하고 남이 잘되는 것을 못본다. 서양인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아프다라는 속담을 이해못한다. 더불어 앞서 말한 인터넷에 중독된 사람들은 공격성 또한 아주 높은 상태기에 다른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며 타인을 까내리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채우려고 한다. 이들은 매우 유아적이어서 자존심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자신의 자존심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면 이를 악물고 저항하고 모든 행동 양식이 남을 비하하면서 자기의 쥐똥만한 자존심을 채우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나는 이걸 유아퇴행화라고 설명했다. 그럴 일이 있을지 몰라도 그 사람들이 나중에 정신차린다면 자신이 왜 그 시절에는 그렇게 모든 것에 화나있었는가라고 한탄할 것이다. 

 

유아적이다보니 자의식이 과잉되어있으며 자존심이 강해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깎기는 것은 용납못한다. 그리고 그 자존심을 더 높이기위해 허영으로 가득찬 삶을 산다. 남에 시선에 매우 신경을 쓰며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모든 것이 보여주기식이다. 그래서 SNS같은 것에 중독되어 자신의 일상을 모두 공유하면서 자랑하지 못하면 주체하지를 못한다. 그리고 그런 만큼 자신도 남의 삶을 보면서 열등감에 빠지고 남이 잘난것에 배아퍼하고 공격적으로 까내린다. 단순히 이런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적 허영심에 가득차서 어디 좆문가로부터 얻은 지식으로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것처럼 행동한다.
이런건 단순히 내 분노를 나열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이런 이들을 수백 수천번 봐왔다.

 

무식한 사람들의 무식한 의견은 인터넷이 없을때는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방법도 없었기때문에 그들의 멍청한 의견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을 일도 없었다. 그래서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모두가 말할 수 있게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런 무식한 사람들의 무식한 신념이 다른 무식한 사람들에게까지 전염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식하면 자신감도 세다고, 틀린것도 박박 우기고 말이 안통한다. 자신만의 이상한 사고방식으로 오히려 아는 사람을 욕한다거나 왜 알아야하냐는 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동양 문명은 왜 서양 문명에게 패배했는가? (tistory.com)

 

동양 문명은 왜 서양 문명에게 패배했는가?

사실 처음부터 동양 문명이 서양 문명에게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중세까지만 해도 동양 문명은 서양 문명을 압도했으며 서양의 중세는 암흑시기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발판이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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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 지장 없는데 왜 알아야한다는 궤변은 이 글에서 이미 다룬바 있다. 당연히 지식을 알아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먹고 싸는 것만 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은 아니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그저 일하는 법만 알면서 개미처럼 살아가면 된다. 이 글에서 나와있듯 동양인들은 철학에 대해 실생활에서 필요없다 타령하면서 합리성과 논리성을 가지지 못했다. 이러한 비과학적 사고로 인해 동아시아 문명은 정체되었다.

이런 주제에서 항상 인용되는 더닝 크루거 효과 곡선이다. 무식은 죄가 아니지면 무식하면서 나대는 것은 죄다. 오히려 무식할 수록 더 자신감이 생겨서 큰 소리로 박박 우긴다. 당연히 지극히 무식하기에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은 제대로된 근거도 없고 대부분의 경우 잘못된 정보에 기초한 것이다. 하지만 그걸 봤을때 그것을 교정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지적한다고 받아들일 사람이었으면 처음부터 그런 멍청한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에게 지적해봤자 그들은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무의미한 일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그런 사람을 봐도 지적하려고 시간낭비하지 말고 무시하는 것이 답이다. 

 

이런 무식한 사람들은 종종 이성과 감성을 같은 위치에 두고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이는 완전히 틀렸다. 감성이라는 것은 감성으로 포장된 비합리와 무논리일 뿐이다. 결코 합리적인 이성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동양철학에서는 감성과 이성을 분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맞는 말이라도 기분을 나쁘게하면 틀린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비논리적 사고가 결국 동양문명 전체를 정체시켰다. 지금 멍청이들이 하고있는 짓도 이것을 똑같이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대부분의 사람은 아주 지극히 무식하다. 그들에게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즉흥적으로 외부의 정보를 접하고 내놓는 휘발적인 생각만 하면서 그걸 자신의 자아라고 착각할 뿐이다. 그들은 순간순간 매번 죽고있다. 왜냐하면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생각이 변하고 자신의 한말에 반대되는 말도 종종 하면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흥미위주의 정보만 주로 접하게 되지만 그런 흥미위주의 정보 특성상 부정확하고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정보를 토대로 제멋대로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기술의 이기가 우리 삶을 지배하면서 그것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책을 안읽고 핸드폰과 컴퓨터만 하면서 이해력이 더 떨어지고 있다.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기술발전으로 사람들이 의존하게되면서 스스로 생각못하는 좀비가 되어간다는 그런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지고있다.

 

우리가 종종 저지르는 오류는 그런 좀비들을 가치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좀비들의 의견이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하찮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마저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기때문에 다른 이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 좀비들이 수천명이든 수만명이든 얼마가 있든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좀비들은 지극히 무식하기에 어떠한 논리도 없다.

 

그리고 그런 어중이떠중이들이 뽑은 의회도 제대로된 판단을 내릴리가 만무하다.

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뽑은 어중이떠중이들로 구성된 민주주의따위는 믿지 않는다. 좀비들은 그저 이권세력에게 휘둘려서 이권세력의 뜻대로 행동할 뿐이다. 허울뿐인 민주주의인 것이다. 제대로 민주주의가 돌아가려면 좀비가 아닌 사람들이 유권자여야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것이 단순히 의사결정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국익에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주 국익에 반대되는 결정을 내린다.

 

우리가 민주정권하에서 경제발전을 한 것인가? 중국이 민주주의라서 이렇게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런것은 민주주의와는 관계가 없다. 민주주의가 나라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발전된 나라에서 사람들이 잘먹게 되고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좋은 체제라는 환상은 버려라 그것은 나라를 좀먹고 부르주아들이 합법적으로 나라를 지배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좀비들을 교묘하게 휘둘러서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좀비들로 하여금 자신들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환상을 품게하여 불만을 잠재우는 것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절대 우월한 체제가 아니다. 그저 좀비들을 만족시키는 체제일 뿐이다. 

 

오히려 나는 민주주의보다는 합리적인 인공지능에 의해서 지배되는 사회가 더 이상적일 것으로 본다.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 따위가 아니라 피도 눈물도 없는 이성적인 인공지능에 의해서 통치되는 것이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치하는 것보다 몇배는 더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굳이 인공지능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이 수천년 전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가 민주정이었던 만큼 그때도 멍청한 대중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중우정치가 심했던 것이다. 정치를 할 사람은 날때부터 계속 전문 정치인으로서 육성된다. 그리고 정치는 그런 현명한 철학자에 의해서 수행된다. 

 

좀비들은 가만 놔두면 자기 스스로를 주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기술이 더 발전하면서 범죄와 테러의 위협은 더 커질 것이다. 아마 미래사회는 완전한 감시사회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감시가 철저히 선하게 사용되기를 노력해야 할것이다.

 

사실은 당신의 감정을 신경쓰지 않는다. 기분 나쁘더라도 사실은 사실인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비이성의 우물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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