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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by 시큼한 파인애플 2021. 2. 11.

한자(漢字)는 고대 중국에서 만들어져 동아시아에서 널리 쓰이는 문자이다. 중국신화에 따르면 황제(黃帝) 시대의 사관이었던 창힐(倉頡)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나 이것은 전설일뿐 실제는 아니다. 창힐은 눈이 4개 달렸다고 전해진다. 한자는 여타 문자들이 그렇듯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게 아니라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다.

 

한자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것으로는 허난성 페이리강(裴李崗)에서 발굴된 자후계각부호(贾湖契刻符号)가 있는데 제작시기는 기원전 6600년경으로 추정된다. 보다시피 그림을 그려논건지 문자로 사용한건지 애매하긴 하지만 이런식으로 한자가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자의 조상인 것이 확실한 것중 최초인 것은 갑골문자이다. 현재 발굴된 것중 가장 오래된 갑골문은 기원전 12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상나라의 22대 왕 무정(武丁) 대의 기록인데 이것으로 인해 전설로 여겨지던 상나라의 존재가 증명되었다. 갑골문은 상나라의 유일한 문헌으로, 거북이 등껍질에 열을 가하면 금이 가는데 이 금을 보고 점을 치고 이 점의 결과를 기록해 두었다. 보통 고대국가들은 제정일치 사회였기 때문에 지도자가 제사장도 겸직했다. 그래서 왕이 이 점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상나라는 제(帝)라는 신을 모셨는데 (상제라고 생각하면 된다.) 강족(羌族), 인방(人方), 주방(周方)에 대한 정벌에 관하여 자주 신에게 뜻을 물어봤다. 주방은 나중에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방(方)은나라를 뜻하고 족은 무리를 뜻한다. 당시에는 인구도 적고 성읍국가 사회였기 때문에 마을, 도시, 씨족 등 무리단위로 모여살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갑골문에서는 주(周)에 대해서 방(方)과 족(族)을 혼용하는데 이는 상나라가 주에 적대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시에는 다민족 국가가 아닌이상 한 나라는 하나의 족이겠지만 나라라고 한하고 족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 좋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딱봐도 알 수 있다. 주나라 또한 갑골문을 썼는데 상(商)를 의(衣)로 썼다. 아마 비하의 의미인 듯 하다. 또는 대읍 상(大邑 商)이라고도 불렀다. 말 그대로 큰 고을 상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는 은허(殷墟)였기 때문에 상나라를 은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에는 인구도 많지 않고 국가의 규모도 작아 마을, 도시, 씨족 단위였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사마천이 쓴 사기에 따르면 점을 치고 갑골을 버렸다고 했는데 발굴 당시 한 곳에서 층층히 발견된 것을 볼때 특별한 곳에 보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주나라에서도 청동으로 만든 솥 등에 갑골문과 유사한 문자들을 세겼는데 이것을 금문(金文)이라고 한다. 갑골문과 거의 동일한 문자체계이다. 청동기 시대에 청동기는 왕권의 상징이기도 했다. 진나라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기 전 시대를 이르는 선진지대에는 구정(九鼎)이라는 9개의 가마솥이 군주의 권위를 상징했다. 여기서 제물을 삶아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구정은 전설에 따르면 하나라 시대에 만들었고 하나라를 멸한 상나라가 가지게 됐다고 한다. 구정이 군주의 권위를 상징했기 때문에 왕들은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 분투했다. 마치 삼국지에서 옥쇄처럼 말이다.

 

이것은 실제는 아니고 복원한 것인데 실제는 주나라가 멸망할때 사수(泗水)의 바닥에 가라앉았다고 한다. 진시황제는 이것을 찾기위해 1000명을 동원했고 기도까지 드렸으나 찾지 못하고 새롭게 옥새를 만들어서 이것을 황제의 상징으로 삼았다. 

 

아무튼 이러한 한자의 조상들은 상나라가 주나라를 멸한 뒤에도 계속 발전해 나갔다. 주나라는 봉건제 국가여서 왕은 수도와 그 근처만 다스리고 나머지는 왕의 책봉을 받은 제후들이 다스렸다. 그런데 주나라가 서쪽의 이민족의 공격을 받아 수도를 호경에서 낙양으로 옮기면서 주나라 왕의 힘이 약해졌고 제후들이 반독립상태가 되어 천하의 패권을 다투게 되었다. 이때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나라들은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글자체를 썼다. 진나라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에 각지에서 쓰이던 글자체를 대전체라고 한다. 지역마다 모습이 달랐다.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제자백가 사상가들(공자, 노자 등)의 저서가 이 글자체로 쓰여졌기 때문에 상당히 연구의 가치가 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뒤에 승상 이사가 지역마다 자형이 달랐던 대전체를 모아 하나의 통일된 문자로 정리하여 바쳤다. 이것을 소전체라고 한다. 

 

이를 진시황때 다시 간추린 서체가 예서이다. 정막(程邈)이라는 사람이 만들어서 진시황에서 바쳤다고 한다.

 

예서는 진나라가 멸망한 후 한나라 시대에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광개토대왕릉비 또한 예서로 쓰였다.

 

중국 삼국시대에 이르러서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한자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는 해서가 등장한다. 해서는 남북조 시대를 거쳐 당나라 시대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한자는 주변국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 베트남,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의 언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자이다. 이들 국가들은 독자적인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한자를 그대로 쓰거나 변형시켜서 쓰곤 했다. 

 

현대에 들어서 한자를 주요하게 쓰는 나라들은 대부분 한자를 간소화한 약자를 표준으로 삼았다. 중국의 간체자와 일본의 신자체가 대표적이다. 

 

한국과 대만, 홍콩에서는 여전히 정체자(원래 한자)를 쓴다. 중국은 일본과 다르게 완전히 한자만 쓰기 때문에 원형을 알수 없을 정도로 더 극단적으로 간소화했다. 

 

sungwhui (daum.net)

 

[스크랩] 중국어 간체자 (약자) 모음

※1955년 중국한자개혁위원회는 “간화방안”에 앞서 “제1차 이체자 정리표”를 발표하여,  1865자의 글자를 810자로 정리하였다. 예 :「并・並・併・竝」을「并」로,     「屍・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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