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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경제

사회주의의 계보

by 시큼한 파인애플 2021. 5. 13.

케임브리지 영영사전에서의 사회주의의 의미
표준국어대사전에서의 사회주의의 의미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많은 분파가 있으나 경제적 평등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통 이를 이루기 위해서 생산수단의 공동 운영을 기초로 하는 협동 경제와 평등한 분배를 지향한다.
공산주의는 사유 재산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공공 소유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의 한 분파이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마르크스 이후 대부분의 사회주의 이념은 마르크스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집대성한 이념이다. 마르크스를 막스(맑스), 마르크스주의를 막시즘(맑시즘)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냥 외래어표기법을 따라 마르크스라고 하겠다.

카를 마르크스는 1818년 프로이센에서 태어난 학자이다. 그는 철학, 경제학, 역사학을 비롯한 많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는 역사와 세상을 새롭게 해석했다. 즉, 새로운 관점으로 본것이다. 역사를 유물론적으로 해석했고 사회의 변동을 변증법적으로 해석했다. 이를 각각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이라고도 부른다. 유물이라는 이름에서 알수 있듯 "물질만이 존재하며 인간의 마음 또한 물질의 작용에 의한 것이며 인간의 의지는 국소적으로는 신경의 작용에 의한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외부 자극에 의해서 좌우된다. 일개 개인의 의지는 역사의 진행에 영향을 주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역사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다."이런 뉘양스의 주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의 유물사관은 기존의 사관이 인물과 사건에 치중한 것과 달리 경제의 발전에 의하여 역사가 전개되었다고 본다. 원시시대에는 생산력이 낮아 잉여생산물이 없었기 때문에 계급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는 원시적 공산주의 사회였다. 고대는 노예 경제 사회였다. 로마제국이나 고대 그리스를 비롯한 국가이 대표적 예시이다. 로마는 사방의 정복지에서 오는 노예로 인해서 풍족한 사회였으나 이는 후에 로마를 멸망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육체적 노동은 차고 넘치는 생체 안드로이드들이 대체하고 지적 노동은 잘 교육받은 엘리트 귀족들이 독점하므로 중산층이 붕괴했다. 그러나 이렇게 중산층을 붕괴한 채로 놔두면 폭동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빵과 서커스라고 불리는 기본소득제 정책을 시행했다. 딴 마음을 못먹게 하는것이다. 이로 인해서 중산층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또한 정부에 종속되었기 때문에 고대 로마로부터 이어지던 민주주의는 붕괴되었고 제정이 시작되었다. 중세는 봉건제 사회였다. 봉건제는 쌍무적 계약에 의한 주종관계로 농노와 영주, 기사와 영주부터 영주와 그 상위 영주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대영주와 국왕간의 계약관계가 존재하는 계층적 계약관계로 이루어진 사회였다. 그리고 봉건제가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전복되고 근대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고대 노예제 경제가 제정을 불러오고 중세 농노제 경제가 영주귀족정을 불러온 것처럼 새로운 경제체제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불러오고 자본주의 이후 도래할 새로운 시대 역시 그 예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모순된 체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공산주의 사회가 들어설 것으로 보았다. 즉, 마르크스는 역사를 전개하는 것이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물질적 생산양식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것을 마르크스주의같은 하나의 이념이 아니라 역사의 해석에 대한 하나의 법칙이자 진리라고 보았다. 그렇기때문에 마르크스주의라는 용어에 대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념에 대해 다른 공상적인 사회주의과 비교하여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단순히 공산주의 이념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철학 체계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봤을때 자본주의 또한 붕괴되고 이후 인류사회는 공산주의 사회가 될것이라고 보았으나 어떻게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진로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의 사관에서 볼수 있듯이 생산량의 증가에 따라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공산주의 사회가 될것이라고 한것이다. 그가 주력한 일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지 사회주의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즉, 그는 혁명가가 아니고 자본주의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고 이후 공산주의 사회가 드러설 것이라는 학자로서의 예측을 한것이다. 아마 마르크스가 말했던 자본주의의 종말에 대한 예측은 대공황에 대한 예측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대공황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진 못했다. 물론 금본위제도를 폐지하게 만드는등 기존의 자유방임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시대를 막을 내리게 만들고 수정자본주의의 시대가 열리게 만드는 등 엄청난 파장을 미쳤음은 변하지 않는다. 금본위제도를 폐지하지 않았다면 경제회복이 안되서 공산주의 사회가 되었을 수도 있나하는 의문도 생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갈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므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에 대한 견해차이로 많은 분파가 나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은 실제로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인 레닌이 마르크스주의를 현실화시킨 것인 레닌주의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1870년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난 혁명가이다. 당시 러시아는 서유럽에 뒤떨어진 농업국가였으므로 빠르게 공업화를 하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였다. 노동시간에 제한이 없었으며 최저임금 또한 없었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자의 삶은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러시아가 독일에게 줘터졌고 러시아 제국의 기득권은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고자 하는데 급급하여 개혁의 물결을 계속 거부하고 있었다. 결국 전쟁반대라는 표어을 내걸고 혁명이 일어나 제정이 전복되는데 이것이 러시아 2월 혁명이다. 하지만 차르가 사라졌을뿐 기아, 빈부격차등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자유주의자들로 구성된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하는 등 노동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결국 다시 혁명이 일어나 레닌을 위시로한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게 되는데 이것이 러시아 10월 혁명이다. 임시정부를 비롯한 반볼셰비키 세력은 수도에서는 쫓겨났으나 멸망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러시아 내전이 발발한다. 레닌은 독일과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이탈한다. 후에 독일은 전쟁에서 지고 이 굴욕적인 강화협정은 파기된다.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가 승리를 거두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건국된다.

레닌의 사상인 레닌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계승한 사상이다. 레닌은 공산주의 사회로 가는 제 1단계를 사회주의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 사회주의 정권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통해서 수립되어야하며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이 마르크스를 계승했다고 하나 앞서 말했든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로 가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방법에 있어서는 레닌의 선택인것이다. 레닌은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했으며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민주집중제를 체계화했다. 민주집중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일환으로, 노동자(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에서는 노동자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선거로 공산당 최고지도기관의 구성원을 선출한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은 절대복종해야하며 반대의견은 허용되지 않는다. 민주집중제는 지도자가 옳은 결정을 내린다는 믿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합리성을 믿고 만들어진 제도였으나 문제는 이는 예외없이 독재로 흘러갔다. 소수의견은 허용되지 않았고 상부에서 결정된 사안을 하부는 복종해야한다. 국민에게 군림하는 권력은 반드시 변질된다. 모든 권력은 결국 공산당 내에서 정점에 선 일인에게 수렴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독재자가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1878년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난 혁명가이다. 스탈린은 10월 혁명 당시 정치장교로 입대해 혁명에 참여했으며 혁명이 끝나고 소수민족 출신이라는 이점을 이용하여 민족문제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소련은 공산당 내에서 세력을 키워나갔고 1922년 서기장으로 선출된다. 서기장으로 선출된 후 레닌이 뇌출혈로 인해 반신불수가 되면서 그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스탈린의 독재적 성향이 표출되면서 레닌은 스탈린을 의심하게 되었고 유언장에서 스탈린은 너무 잔인하므로 스탈린을 서기장에서 해임하고 트로츠키를 서기장으로 임명하라고 썼으며 트로츠키의 단점은 동료들이 채워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혁명의 1등공신이었기때문에 고만고만한 스탈린을 서기장으로 앉혀놓는 것이 통제하기 쉽다고 생각한 정치국 위원들에 의해서 이 유언장은 은폐되었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영구혁명론을 주장했는데 이는 국제혁명 이론의 일종으로, 세계혁명만이 진정한 사회주의를 달성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 세계 여러나라의 혁명세력을 도와 세계혁명을 추진하고 혁명에 성공하면 그 나라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농업국가인 러시아가 공업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스탈린이 주장한 (스탈린이 만든것은 아님) 일국사회주의론은 소련은 후진국이므로 국제혁명은 필요하나 지금은 국내의 문제에 집중해야하며 소련의 공업화를 통해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력투쟁에서 패한 트로츠키는 추방되었고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스탈린은 대숙청을 실시한다. 스탈린은 레닌주의를 계승하여 스탈린주의라는 이념을 낳았다. 물론 본인이 스탈린주의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념을 마르크스 레닌주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서 표현했다. 즉,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를 절충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스탈린의 사상을 의미하는 말이다. 스탈린은 자기 나름대로 마르크스와 레닌을 분석하여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고 이를 표준적인 공산주의 이론으로 삼고 각지의 공산당에게 보급했다. 소련의 공산주의는 이제 곧 마르크스 레닌주의(=스탈린주의)가 되었다.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소련에 의해 건국되었기 때문에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현실 사회주의라는 탈을 쓰고 공산주의의 대세로 자리잡았고 그 나라들의 국가이념이 되었다. 마치 사회주의가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독재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듯한 불쾌한 작명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핵심이론은 러시아 내전 당시 전시공산주의 제도에서 착안한 상시 총력태세의 유지와 이를 위한 철권통치, 국가주도의 계획경제와 생산물 분배, 당에 절대적으로 충성(당 중앙은 무 오류), 일국사회주의론이다. 당에 절대적으로 충성한다는 부분은 앞에서 말했던 민주집중제와 같은데, 공산주의자들은 당은 많은 개인의 뜻을 모은 집단지성이므로 틀릴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이성을 너무나 낙관적으로 믿은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는 예외없이 공산주의가 독재권력으로 이어지게 했다. 참고로 지금까지 읽었으면 알겠지만 레닌주의, 스탈린주의는 단순히 경제체제만을 포함한 것이 아니고 정치체제까지 포함한 이념이다. 애초에 경제는 정치와 떼어낼 수 없는 관계이다.

국가주의적 사회주의는 동구권 붕괴와 함께 막을 내렸으나 사회주의는 죽은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의 한 분파인 사회민주주의는 온건한 태도를 바탕으로 북유럽에서 뿌리를 내렸고 북유럽 국가들을 세계에서 손꼽히는 성공적인 복지국가로 만들었다. 마르크스가 근대 시민혁명을 경제의 발달과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성장한 부르주아 계급이 시민들을 이용해서 봉건제를 전복시킨 부르주아 혁명으로 격하한 것처럼 사회주의자들은 평등을 외치며 빈자들을 선동하여 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뒤 평등은 간데없고 자본가가 공산당 간부로 대체되었을뿐 일반시민의 삶은 그대로였다는 점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것은 기득권이 누구냐일뿐 일반 대중들의 위치는 결과적으로 그대로지 않나 싶다. 물론 명시적으로는 계급이 사라지고 평등하다고하나 결과적으로는 보이던 계급이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대체되었을뿐 똑같은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로서는 사회주의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이 될수 없다고 생각하며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체제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유지되어야한다고 본다. 미래에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 기술의 발달로 어쩌면 마르크스가 말했던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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