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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경제

소속감은 허상이다.

by 시큼한 파인애플 2021. 6. 3.

 

소속감이라는 것은 지배층이 피지배층들을 이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뿐이다. 개인들이 특정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자신과 그것을 동일시하게 하면서 비참한 환경에서 살면서도 그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공격당하면 마치 자신이 공격당한 것처럼 느끼며 열심히 그것에 대해 옹호하는, 알아서 열심히 지배층의 이권을 위해서 노력하게 만드는, 지배층 입장에서는 편리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민족도 국가도 전부 허상일 뿐이다. 지배층이 비지배층을 지배하고 그들의 산물을 대가없이 취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도구일 뿐이다. 피지배층이 이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계급투쟁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부르주아들의 시도이다. 민족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만이 존재할 뿐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프랑스 혁명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집단을 동원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개인과 국가를 동일시하여 개인으로 하여금 국가를 위해 행동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부르주아들은 이를 이용해서 혁명을 일으키고 사회지배층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시민혁명은 부르주아들이 시민들을 선동해서 귀족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자신들이 앉을 뿐 피지배층의 처지는 그대로인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서로를 증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에 태어난 그들은 그들 증오심의 원천인 전쟁을 겪지도 않았음에도 서로를 증오한다. 그 이유는 태어날때부터 민족으로서 소속감을 교육받으며 생판 모르는 남을 증오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에 태어난 그들은 사실 과거의 일과는 서로 별 관련이 없다. 태어날 나라는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니면서 한국에 태어나면 자신이 겪지도 못한 전쟁의 일로 일본인을 증오하게 교육받는 것이다. 

 

소속감이란 그런 것이다. 본적도 없는 생판 남을 증오하게 만들고 평범한 사람들끼리 싸우게 만들고 정작 내부의 진짜 적들은 보지 못하게 하는 그런 것이다. 

실로 불행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선량한 사람들을 서로 증오하게 만들다니. 소속감이란, 민족이란 이렇게 악랄한 것이다.

증오의 고리이고 불행의 고리이다.

 

잉여 생산물이 생긴 원시시대 이후 줄곳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 소수의 사람들이 일하지도 않고 다수의 피지배층의 생산물을 받아먹었다. 소수가 부를 독점했다. 지금도 그렇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체제는 이와 같이 소수가 다수 위에 있는 것을 정당화하고 피지배층이 불만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교모한 술수이다. 

 

그들의 술수에 놀아나는 것은, 계속 노예로 살고 싶다는 것과 같다.

 

한국의 정치인들도 이러한 "민족"을 이용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남을 증오하게 만들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긴다. 

한국에서만 특이하게 국제주의적이고 반민족주의적이여야할 좌파세력이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근거이다. 

나라 자체가 외세에 의해서 세워졌기 때문에 외세에 대한 반감과 민족주의 정신이 국민들에게 있다. 그것을 이용하여 지지율이 떨어질때마다 민족주의를 주장하고, 외부의 적을 언급하면서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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