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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경제

민중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by 시큼한 파인애플 2021. 6. 4.

대중의 여론은 아주 하찮고 사소한 방식으로 형성된다. 그저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주장을 보면 그것에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영향을 받고 그들의 생각이 형성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가지기보다는 그저 다수의 생각을 따라간다.

 

예를 들어 특정 신문사를 보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신문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나쁜 기사만 보여주면다면 그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확증편향으로 이어진다. 그 사람이 나쁜놈이라는 견해가 생겼으니 그것을 증명하는 것만 보면서 그 생각을 더 강화하는 것이다.

 

또하나의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뉴스댓글을 봤다고 치자. 대부분의 사람은 그 댓글의 주장이 진짜인지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그것과 비슷한 주장을 한다면 그것이 진짜라고 믿고 그 주장을 따라서 믿게되는 것이다. 

 

어떤 배우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설사 이것이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졌다고 해도, 사람들의 기억속에는 부정적인 것이 더 깊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 부정적인 인상은 무의식적으로 그 배우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것이다.

 

괴벨스가 한말은 아니지만 그가 한말로 알려져있는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라는 말이 있다.

대중은 날조에 매우 취약하고 이가 거짓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 날조가 나중에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어도 사람들은 그 날조의 내용에 대해서만 기억하게 된다.

 

광우병 선동을 보라 진실과 관계없이 대중은 자신이 보려는 대로 본다. 

말도 안되는 개지랄을 많은 사람들이 믿으면서 결국 진짜인것처럼 받아들여진것이다. 

 

당시 광우병으로 지랄하던 대중들은 다 어디갔는가? 누가 책임을 졌는가?

 

우파든 좌파든 관계없이 대중의 성질은 거기서 거기이다. 어떤 편에 서있을뿐의 차이일뿐 결국 똑같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찮은 방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결정하는 대중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리가 만무하며 그저 특정 세력에게 휘둘리는 중우정치가 될 뿐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세력이란 바로 부르주아들이다. 부르주아들의 정교한 공작으로 인해서 대중의 여론이 형성되는 것이며 그것을 대중은 자신의 자유의지라고 믿는것이다.

 

대중들은 스스로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결정을 내린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들의 견해 하나하나가 특정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작한 결과로서 대중들의 생각이 결정되는 것이다.

대중들은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생각했다고 믿지만 결국 남에 의해서 만들어진 생각일 뿐이다.

민중은 놀라울 정도로 여론조작에 취약하다. 

 

프랑스 혁명이든 러시아 혁명이든 기득권을 기득권이 되려는 자들이 민중을 선동해서 일으킨 것이다.

민중은 이용만 당할 뿐 처지는 계속 똑같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도 민중이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인 것으로 착각하지만 진짜 주인은 부르주아들이다.

 

나는 이렇게 판단력이 결여된 어중이 떠중이들이 뽑은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문어에게 결정하게 하는 것이 더 옳은 판단을 내릴것이다. 

 

대중은 올바른 판단을 내릴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개인들은 서로 대립할뿐 성질은 같다. 모두 거기서 거기인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것에 미친 광신도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우파든 좌파든 기득권 정치인들의 손에서 놀아나는 장기말일 뿐이다. 

그저 남자로 태어났으면 반페미가 되고 여자로 태어났으면 페미가 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분열을 선동해서 정치인들이다. 

페미운동가든 반페미운동가든 민중을 선동해서 이익을 얻는 존재인 것이다.

불쌍한 민중들은 그것도 모른채 그저 서로를 헐뜯고 증오하는 것이다. 정착 자신들을 선동한 그들은 잘먹고 잘사는데 비참한 삶을 사는 피지배층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적을 보지못하고 서로 싸우는 것이다. 이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서로 대립적인 위치이지만 적대적 공생 관계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것은 일반 민중이다.

 

위에서 말했듯 지금까지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인 것이다. 그저 민중을 선동해서 본래의 지배층을 몰아내고 새로운 지배층이 도래할 뿐 민중의 처지는 똑같다. 

 

나는 감정적인 이유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환경적이고 외부적 요인으로 결정되고 좌지우지되는 대중들의 판단은 국가적으로 올바른 결정과는 거리가 멀고 그들은 이용당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뿐이다. 

물론 지금까지 가장 나은 체제가 민주주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대놓고 지배층이 민중을 무시하고 군림하는 것보다는 겉으로나마 민중이 나라를 지배한다는 착각을 심어주는 것이 민중에게 더 이로운 일 일지도 모른다.

나는 민주주의의 불완전성에 대해서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민중은 타의에 의해서 조종당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허울뿐이라는 것이다.

 

개개인들의 성질은 거기서 모두 거기서 거기이다. 개인들의 생각은 거시적인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그 또한 하나의 이념일 뿐이다. 

 

플라톤은 분별없는 민중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중우정치를 언급하며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철인정치를 주장했다.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인민재판에 의해서 희생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자에 의해서 통치되는 사회가 가장 이성적이고 민중에게도 이로울 것이라고 본것이다.

 

나는 그 완벽한 철인이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정치인들보다는 합리적이고 냉청한 인공지능이 그들을 대체하는 것이 몇배는 이로울 것이라 믿는다.

이상적인 지배체제는 인공지능에 의한 지배라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자신의 결정능력을 의심하는 이글을 보고 당신은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 글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관련없이 말이다. 그것또한 이 글을 증명해주는 근거 아니겠는가?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고 있다는 근거 아니겠는가?

 

그런 개돼지같은 대중이 되고싶지 않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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