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동북아시아에 있는 섬나라로 면적은 377,973㎢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대한민국 면적(100,210km²)의 3.77배,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면적(223,348㎢)의 1.69배이며 영국의 1.5배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면적을 한반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한반도의 면적(220,847km²)은 일본을 이루는 5개 섬중(4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 국토교통성은 오키나와까지 포함하여 일본의 본섬을 5개로 규정하고 있다.) 혼슈(227,943km²) 면적과 비슷하다. 홋카이도의 면적만 해도 83,454km²(남한면적의 약 4/5)으로 그렇게 작은 나라는 아니다.
인구는 1억 2680천만명으로 5147만인 한국의 인구의 2배가 넘는다. 북한의 인구(2549만)까지 합치면 1.6배 차이나게 된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막부라고하는 무사정권이 들어서 있었으며 가마쿠라-무로마치-에도 막부로 이어졌다.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천황와 실권을 가진 쇼군(장군将軍의 일본식 독음이다.)이 존재했으나 일본제국시기 천황이 실제로 힘을 가진적도 있었다. 패전후 "일본의 군주"는 다시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이는 일본헌법 제 1조에 규정되어있다.
일본의 GDP(국내 총생산)이 세계 3위인 경제적으로 막강한 국가이다. 거품경제시기에는 미국까지 추월할거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일본의 GDP(명목)는 4.872조 USD이며 1.531조 USD인 한국의 3배가 넘는다. 비교를 위해 말하자면 미국의 GDP는 19.39조 USD이며 중국의 GDP는 12.24조 USD이고 영국의 GDP는 2.622조 USD이며 독일의 GDP는 3.677조 USD이다. (출처 세계은행)
일본이 거품경제일 시절 한국의 GDP는 겨우 규슈의 GRDP(지역총생산)와 비슷했다. 또한 일본 수도권인 간토지역의 1/5 수준이었다.
일본의 지역에 비슷한 GDP의 국가들을 대입해본 지도이다. 당시 일본의 경제력은 막강했다는것을 알수있다.(지금도 미국, 중국에 이은 3위이지만 앞에서 말했듯 당시에는 미국까지 따라잡을거라는 전망까지 있었다. 사실 대부분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일본 수도권은 세계 최대의 메갈로폴리스이다. (2위 뉴욕 도시권, 3위 로스엔젤레스 도시권, 4위 한국 수도권) 인구는 4382만명이며 GRDP는 1조 6,167억 달러으로 남한(인구 5147만, GDP 1조 5310억 달러)과 비교해보면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구글지도에서 보면 알겠지만 간토평야라고 불리는 평야에 도시가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지도에서 초록색으로 표시된 간토지방과 주부지방의 야마나시 현(19번)을 일본 수도권이라고 한다. 간토와 일본 수도권이 동의어로 쓰이긴한다.
일본의 행정구역은 도도부현(都道府県)이라고 하는 광역자치단체와 그 아래있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정촌(市町村)으로 이루어져있다. 도(都)의 도쿄도, 도(道)의 홋카이도, 부(府)의 오사카부와 교토부과 43개의 현(県)이다. 도(都)는 특별시(서울특별시), 도(道)는 특별자치도(제주특별자치도), 부(府)는 광역시(광주, 부산, 대구, 대전)를 생각하면 쉽다. 현의 역사는 폐번치현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기존의 번(藩)을 폐하고 현(県)과 부(府)를 신설한 개혁이다. (메이지 시대에 일어났으며 한창 메이지유신이라고 하는 근대화 과정 중이었다.) 번(藩)은 막부시대 영주(다이묘)가 다스리던 영지를 말하는데 한개의 번은 한개의 현정도의 크기라고 생각하면된다. 번은 유럽의 봉건제 시대의 공국등을 생각하면 쉽다. 꽤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사쓰마번은 현재의 오키나와가 되는 류큐왕국을 정복할 정도였다. 일본의 군주가 다시 실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흑선내항 이후 번들이 막부에 반란을 일으켜 군주를 다시 세웠기 때문이다.(존왕양이,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한다.) 자세한것은 다른 글에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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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의 관계
사실 일반 일본시민은 한국에게 별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K-POP이나 한국 화장품 등의 문화적 이유로 호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전후세대는 정치에는 별다른 관심도 없다. 2017년의 총선때는 선거율이 33%일 정도이다.(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대신 노인들이 선거를 꼬박꼬박한다. 그들에게 과거의 침략전쟁은 그저 자신과는 상관없는 지나가버린 과거일 뿐이다. 당시에는 먹지 않으면 먹히는 제국주의의 배틀로얄이었으니 침략전쟁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할수도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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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에게 사과를 했는가?
일본은 한국에게 많은 사과와 사죄를 하였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들어 일본정부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일본정부 역시 한일합의에서 다시금 위안부의 일본책임을 인정했다. 사실 현재 논란인것은 그저 일본이 배상을 더 해야하나일뿐 일본이 모든것을 인정하고 사과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이 조차도 한국의 억지인 면이 있다. 한일기본조약에서 2년치 예산이라는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받고 "개인 청구권은 할수 없는것으로 한다."라고 이미 청산하였는데 한국 대법원에서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고 또 다시 배상하라는건 어이없는 일이다. 즉, 한일기본조약에서 한국정부에게 배상금을 주고 그돈으로 한국이 자국민에게 배상을 하는것이다. 다른 국가의 사례를 봐도 배상할때는 개인별로 배상하는것이 아닌 하나의 협정을 통해 국가에게 배상하고 돈을 받는 국가가 자국민에게 그 돈을 나눠줌으로써 배상한다. 그런데 돈은 돈대로 받고 또다시 개인별로 다시 배상하라니 일본측에서는 절대 받아들일수 없는 주장인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개인 청구권이 소멸한것이 아니라 더이상 주장할 수 없는것이다. 이가 일본정부 입장이기도 하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국제분쟁해결 과정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일괄보상협정’ 방식과 배치되는 판단을 내렸다는 점을 지적한다. 식민지배 등 관련된 피해자가 많은 분쟁의 경우 개인의 청구권을 개별 소송을 통해 일일이 해결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일괄보상협정 방식을 많이 채택하고 있고, 2차 세계대전 후 대만, 인도네시아, 미얀마, 구소련 등도 이러한 국가 간 일괄보상협정을 통해 배상 문제를 다 해결했다는 것이다.)
이하 일본의 사죄 및 반성 목록
1965년 6월 22일: 외무부 장관 시나 에쓰사부로 (椎名悦三郎)가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우리의 두 나라’ 그곳의 긴 역사는 불행한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유감이며 우리는 깊게 후회를 느낍니다.” (한일기본조약에 조인하면서)
1982년 8월 24일: 총리 스즈키 젠코 (鈴木善幸) “난 과거 전쟁 동안 아시아 국가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가했던 것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침략으로서 일본의 점령을 정죄하는 비판들이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1982년 8월 26일: 관방 장관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喜一)가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첫 번째,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은 과거의 우리나라가 했던 행동들과 파시스트 정부의 길을 따랐던 것이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야기했던 사실을 그런 행동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후회와 마음가짐으로서 깊게 알고 있습니다. 일본은 1965년 일-한 공동 성명에서 ‘과거의 관계는 유감스럽고, 일본은 깊은 후회를 느낀다.’ 그리고 일-중 공동 성명에서, ‘일본이 과거 전쟁을 통해 중국 국민에게 야기했던 심각한 피해에 대한 책임감을 날카롭게 알아채고 깊게 스스로 책망한다.’고 인정했습니다. 이 성명들은 일본의 후회와 내가 진술했던 결정과 이 인식이 오늘날 모두 바뀌지 않았음을 확증합니다. 두 번째, 일-한 공동 성명, 그리고 일-중 공동 성명의 이 정신은 당연히 일본의 학교 교육과 교과서 인증에서 존중받아야 합니다.
1984년 11월 6일: 히로히토 천황 (昭和天皇)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오늘날 이 기간 동안 우리 사이의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그리고 난 이것이 다시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전두환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1984년 11월 7일: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 (中曽根康弘) “일본이 당신의 나라와 국민들에게 거대한 고통을 가지고 왔던 기간이 이 세기에 있었습니다. 난 이 자리에서 일본의 정부와 국민들이 이 오류에 대해 깊은 유감을 느낀다는 것을 진술하고 싶습니다.”
1989년: 총리 타케시타 노보루 (竹下登)가 일본 국회의 연설에서 “우리가 반복된 기회를 이전에 명료하게 했던 것 같이,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들은 과거 우리나라의 행동이 이웃 국가들의 많은 국민들에게 괴로움과 상실을 가져왔던 것을 깊게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의 후회와 해결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런 일들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때부터 ‘평화 국가’로서의 과정을 따라왔습니다. 이 의식과 후회는 특히 우리나라와 우리와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반도 사이의 관계에서 강조되어야 합니다. 이 기회에 한반도에서 새로운 상황을 직면한 것 같이, 과거 관계에 대한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큰 후회와 슬픔을 표현하길 원합니다.” (일본 국회에서의 연설)
1990년 4월 18일: 외무부 장관 나카야마 다로 (中山太郎)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일본은 이 사할린으로 강제이주된 (한국인)분들이 그들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계획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이주 당한 것과 종전 후에 그곳에 남아 있어야 했던 비극에 대해 깊게 사죄합니다.” (188번째 외교 국회 회의 하원위원회).
1990년 5월 24일: 아키히토 천황 (上皇明仁)이 노태우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우리 국가에 의해 전해진, 이 불행한 기간 동안 당신의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비추어 볼 때, 가장 큰 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태우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1990년 5월 25일: 총리 가이후 도시키 (海部俊樹)가 노태우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난 과거 특정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행동의 대한 결과로서 한반도의 국민들이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겪었는지 겸손하게 비추어 보고 사죄를 표할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일본에서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
1992년 1월 1일: 총리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喜一)가 기자 회견에서 “위안부에 관하여, 난 내 마음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사과합니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던 분들에게 유감을 느낍니다.”
1992년 1월 16일: 총리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喜一)가 노태우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우선적으로, 우리 일본인들은 우리 국가의 행동으로 인한 과거 특정 기간 동안 당신의 국민들이 경험했던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에 대한 사실을 마음속에 지니고, 뉘우치는 감정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총리로서, 난 한 번 더 마음 깊은 곳의 유감과 당신 국가의 국민들에게 사죄를 표합니다.”
1992년 1월 17일: 총리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喜一)가 대한민국 방문에서의 정책 연설에서 “우리 국가와 당신 국가 사이에 잊지 말아야 할 관계는 수 천 년 동안 우리가 공격자였고 당신들이 희생자였던 특정 기간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난 다시 한 번 우리 국가의 행동으로 인해 이 기간 동안 당신들이 경험했던 참을 수 없는 괴로움과 슬픔을 위해 가슴 깊은 유감과 사과를 표하고 싶습니다. 최근 소위 ‘군 위안부’가 화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난 이것과 같은 그 사고가 진심으로 애처롭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1992년 6월 6일: 관방 장관 가토 고이치 (加藤紘一 ) “정부는 ‘군 위안부’로서 그들의 국적과 출생지에 관계없이 형언할 수 없는 곤란을 겪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와 유감을 표합니다. 다시 반복되지 말아야 할 깊은 양심의 가책과 결단력으로, 일본은 대한민국과 다른 국가들 그리고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평화주의 국가로서 자국의 위치를 관리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은대로, 난 정말로 이 쟁점에 관해 몹시 슬픔을 느낍니다. 다양한 방면의 사람들의 의견을 들음으로써, 난 그런 곤경을 겪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슨 방식으로 우리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려하고 싶습니다.” (한반도, 소위 ‘군 위안부’에 대한 소식에 대해 관방장관 코이치 카토의 성명)
1993년 8월 4일: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 (河野洋平) “의심할 여지없이, 이것은 당시 많은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성에 심한 상처를 입혔던 군 당국의 만행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다시 한 번 자국의 진실한 사과와 참회를 출신 장소와 위안부 여성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치료할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부상을 겪은 이들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넓힐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의 고노 담화)
1993년 8월 11일: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 (細川護煕)가 그의 취임식 후 첫 번째 기자 회견에서 “나 자신은 이것이 공격의 전쟁이었고, 잘못된 전쟁이었음을 믿습니다.”
1993년 8월 23일: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 (細川護煕)가 127회 국회 회의에서 “그 때로부터 48년 후, 우리의 국가는 번영과 평화를 누리는 국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지난 전쟁에서의 궁극적인 희생과, 이전 세대 국민들의 업적의 산물 위에 설립됐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빌어 세계에 과거와 새로운 결정에 대한 참회를 확실하게 표현하고자 합니다. 먼저 이 경우에서, 우리는 과거 우리 국가에 의한 침략과 식민 통치가 많은 사람들 위에 크나큰 슬픔과 고통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반성하고 사죄하고자 합니다.”
1993년 11월 24일: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 (細川護煕)가 128회 국회 회의에서 “난 정직하게 우리 국가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과거에 참을 수 없는 고난과 슬픔을 가져왔다는 인식과 다시 한 번 깊은 유감과 사과를 표현하기 위해 ‘공격의 전쟁’과 ‘공격의 행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1994년 8월 31일: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山富市)가 연설에서 “난 이 기회를 빌어 이 공격 행위들, 식민 통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야기했던 것과 같은, 일본의 미래 진로가 나의 반전 책무에 맞춰 세계 평화를 만드는 데에 전념해야 할 나라가 돼야 할 것에 기반을 두어 나의 신념을 진술하고자 합니다. 우리 일본인에게 이웃 아시아와 다른 곳의 사람들과 함께 우리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굳건한 상호의 이해와 양면에서의 고통을 극복함으로써 건설할 수 있는 자신감만이 우리와 이웃 나라들이 함께 아시아-태평양의 미래를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성을 흐렸던 ‘군 위안부’에 대한 논쟁에서, 난 다시 한 번 이 기회를 이용하여 나의 깊고 진실한 유감과 사과를 표하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다룸으로서, 난 후회와 사과에 대해 그런 감정들을 논증하는 것에 대한 한 방식은 정면으로 과거를 직면하고 미래 세대에게 바르게 전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 및 지역과 함께 상호 공동 이해를 증진시키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사업은 그러한 믿음으로 일관성 있게 만들어져 왔습니다.” (‘평화, 우정, 그리고 진취성을 교류하다’에서,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
1995년 7월: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山富市)가 성명에서 “이른바 군 위안부에 대한 문제는 당시의 일본군과 관련된, 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성을 심각하게 더럽힌 하나의 흉터입니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변명할 수 없습니다. 난 군 위안부로서,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감정적, 육체적 부상을 겪은 사람들에게 깊은 사죄를 표합니다.” (‘아시아 여성기금’ 설립 당시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성명)
1995년 8월 15일: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山富市)가 성명에서 “멀지 않은 과거의 특정 기간 동안, 일본은, 자국의 식민 통치와 공격을 통해, 많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입혔습니다. 특별히 아시아 말입니다. 그런 실수가 미래에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에서, 난 생각합니다, 인류애의 정신에서, 이 반박할 수 없는 역사의 사실들, 그리고 다시 한 번 여기에 나의 깊은 후회를 표하고, 내 가슴 깊은 곳의 사과를 전합니다.”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성명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
1996년 6월 23일: 총리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가 기자 회견에서 “하시모토는 한국 국민 이름의 일본화 정책 같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의 양상에 대하여 언급했고, 이것이 얼마나 한국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입혔을지는 상상 이상이라고 논평했습니다. 하시모토는 또한 한국 위안부 문제에 관해 어떤 것도 여성의 명예와 존엄성을 이것보다 더 해칠 수 없으며, 깊은 유감과 마음 속 깊은 사죄를 알리고 싶다고 언급했습니다.” (대한민국,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의 공동 기자 회견에서)
1998년 10월 8일: 아키히토 천황 (上皇明仁)이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과의 만찬 연설에서 “우리 국가가 한반도에 크나큰 고통을 가져온 기간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것에 대해 느끼는 깊은 슬픔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1998년 10월 8일: 총리 오부치 게이조 (小渕恵三)의 선언에서 “이 세기에서 일본과 대한민국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총리 오부치는 겸손한 자세로 과거 특정 기간 동안 일본이 야기한, 식민 통치로 인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피해와 고통의 역사의 사실에 대해 언급했고, 이 사실에 대해 깊은 참회와 가슴 어린 사죄를 표현했습니다. 대통령 김대중은 진심으로 총리 오부치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받아들였고 이것에 대한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는 또한 친절한 협력과 선린관계 뿐만 아니라 화해를 기반으로 한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건설하고 그들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는 현재 양 국가의 관점을 표시했습니다.” (한일 공동 선언)
2001년 4월 3일: 관방 장관 후쿠다 야스오 (福田康夫) “일본은 멀지 않은 과거의 기간 동안, 많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게 식민 통치와 공격을 통해 큰 피해와 고통을 일으켰던 것을 겸손히 인정하며, 이것에 대해 깊은 참회와 진실한 사죄를 표합니다. 이러한 인정은 이후 내각에 의해 계승되었고 현재 내각에선 이것에 관한 변화가 없습니다.” (2002년부터 고등학교 학생에게 사용되는 역사 교과서에 대한 관방 장관 후쿠다 야스오의 논평)
2001년 10월 15일: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담화 동안, 김 대통령은 총리 고이즈미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참회와 사죄를 표한 서대문 독립 공원에서 그의 발언에 매우 감사했습니다.”
2001년 11월 8일: 외무부 장관 다나카 마키코 (田中眞紀子)가 연설에서 “우리는 지난 전쟁 동안 일본이 많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일으킨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가 그들의 소중한 생활을 잃었고 부상당했습니다. 전쟁은 이전 전쟁 포로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겸손한 정신으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대면하면서, 난 오늘 1995년 무라야마의 성명에서 표현된 우리의 깊은 참회와 가슴 속 깊은 사죄를 재확인합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 체결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외무부 장관 마키코 타나카의 연설)
2001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또한 1995년부터 총리직을 수행했던 하시모토류타로, 오부치 게이조, 모리 요시로를 포함해 모든 총리에 의해 서명됨)가 편지에서 “일본의 총리로서, 난 이와 같이 위안부로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고 치료할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부상을 입은 모든 여성들에게 나의 가장 진실한 사과와 참회를 새로 넓힙니다. 우리는 과거의 무게를 피해서도, 미래에 대한 책임을 피해서도 안 됩니다. 난 우리나라가 사죄와 참회의 심정으로 자국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정면으로 과거 역사를 바라보고 이것을 정확히 미래 세대에 전달해야 합니다.”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전 위안부에게 보내는 편지로부터)
2002년 9월 17일: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일본 측은 겸손한 마음으로 과거 식민 통치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거대한 피해와 고통을 야기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언급하며, 깊은 조의와 사죄를 표합니다.”(조일평양선언)
2003년 8월 15일: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전쟁 동안, 일본은 많은 나라의 사람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야기했습니다. 일본의 국민을 대신하여, 나는 이로써 내가 희생자들에게 신실한 애도를 표한 것과 같이 내 깊은 참회의 심정을 갱신합니다.” (전사자에 대한 58기 기념행사에서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연설)
2005년 4월 22일: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일본은 겸손한 정신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항상 머릿속에 새겨져 있는 깊은 참회와 진심어린 사죄의 감정으로, 일본은 2차세계대전 종전부터 끊임없이 경제적 힘을 군사적 힘으로 전환하지 않으면서, 모든 문제를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하는 원칙으로, 의지를 힘으로 쓰는 일이 없이 단호하게 유지해 왔습니다. 일본은 다시 한 번 세상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기여하는 해결책을 제시할 뿐 아니라, 신뢰의 관계를 존중하는 것을 세계의 국가들과 즐깁니다.” (2005년 아시아-아프리카 정상에서 일본 총리의 연설)
2005년 8월 15일: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과거에, 일본은 식민 통치와 공격을 통해 많은 국가의 국민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게 거대한 피해와 고통을 입혔습니다. 진심으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마주하면서, 난 다시 한 번 깊은 참회와 가슴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하고, 또한 전쟁에서 국내와 해외 모두의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난 끔찍한 전쟁의 교훈을 악화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전쟁을 다시 수행함 없이 세계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하기로 정해져 있습니다.”
2010년 2월 11일: 외무장관 오카다 가쓰야 (岡田克也) “난 100년 전 한국인들의 나라와 국가적 자존심을 박탈했던 것을 생각합니다. 난 자신들의 나라를 잃고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카다가 공동 소식 회의 동안 한국 외무장관 유명환에게 말했다. (이것은 일본의 한국 식민지 합병 100 주년을 표시하는 성명이었으며, 특별히 일본의 전쟁 행위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2010년 8월 10일: 총리 간 나오토 (菅直人)가 한국에 대한 일제의 식민 지배 시기 동안의 ‘가학 행위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일본의 교도 통신사는 또한 내각 의원들이 성명을 지지했다고 보도했다. 덧붙여, 간은 한국이 요구하고 있었던 귀중한 문화유산을 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한국 고대 왕조의 기록이었다.
2010년 12월 7일: 총리 간 나오토 (菅直人)가 1910년 합병의 100주년 기념일에 만들어진 성명의 일부분으로서 한국의 식민지 아래 겪었던 고통에 대해 사과했다.
“난 식민지 지배로 인해 야기된 크나큰 피해와 고통에 대해 갱신된 깊은 유감과 마음 깊은 사과를 표합니다.” 간은 일본이 그들의 국가적 자존심에 거대한 피해와 결과로서 문화와 주권의 손실을 겪은 ‘한국 국민들의 의지에 반하여서’ 한국을 식민지화했고, 덧붙여 그는 역사를 해결하기 위해 용기와 겸손으로 자신의 나라에 정직한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고 싶다고 말했다
2015년 8월 14일: 총리 아베 신조 (安倍晋三)의 담화 “전쟁터의 뒤안에는 명예와 존엄이 크게 손상된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에게 가늠할 수 없는 손해와 고통을 우리나라가 안겨 준 사실. 역사란 실로 돌이킬 수 없는 가혹한 것입니다. 한 분 한 분에게 저마다의 인생이 있고, 꿈이 있으며,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깊이 되새길 때, 지금도 여전히 말을 잃고 그저 애끓는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일본은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왔습니다. 그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 대만, 한국, 중국 등 이웃사람인 아시아인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전후 일관되게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다해 왔습니다.
이러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다한다고 해도 가족을 잃으신 분들의 슬픔, 전화(戰禍)로 도탄의 고통을 겪으신 분들의 아픈 기억은 앞으로도 결코 치유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20세기 전시 하에 수많은 여성들의 존엄과 명예가 크게 손상된 과거를 우리 가슴에 계속 새기겠습니다. 그러기에 바로 일본은 이런 여성들의 마음에 늘 다가가는 나라가 되려고 합니다. 21세기야말로 여성의 인권이 손상되는 일이 없는 세기로 만들기 위해 세계를 리드해 가겠습니다.”
위키피디아의 일본의 사죄목록도 참고하기 바란다.
끝으로 고노담화, 무라야마 담화, 고이즈미 담화, 간 담화를 첨부하겠다.
+귀찮은 사람을 위한 무라야마 담화의 중요내용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아시아 諸国, 아시아의 여러나라)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원문
わが国は、遠くない過去の一時期、国策を誤り、戦争への道を歩んで国民を存亡の危機に陥れ、植民地支配と侵略によって、多くの国々、とりわけアジア諸国の人々に対して多大の損害と苦痛を与えました。私は、未来に誤ち無からしめんとするが故に、疑うべくもないこの歴史の事実を謙虚に受け止め、ここにあらためて痛切な反省の意を表し、心からのお詫びの気持ちを表明いたします。また、この歴史がもたらした内外すべての犠牲者に深い哀悼の念を捧げます。
「心からのお詫びの気持ちを表明いたします」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내각 회의의 결정을 거친 담화로, 무라야마 개인의 사적인 견해가 아닌 당시 일본의 공식견해이다. 일본정부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며 이가 일본정부의 공식 견해임을 인정하고 있다.
https://www.mofa.go.jp/mofaj/press/danwa/07/dmu_0815.html
일본 외무성 무라야마 담화 자료
https://www2.nhk.or.jp/archives/tv60bin/detail/index.cgi?das_id=D0009030739_00000
NHK의 무라야마 담화 관련 자료
[고노 담화]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 발표
1993년 8월 4일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정부는 재작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왔으나 이번에 그 결과가 정리됐으므로 발표하기로 했다.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됐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甘言),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官憲)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하의 참혹한 것이었다.
또한 전지(戰地)에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에 관해서는 일본을 별도로 하면 한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당시의 한반도는 우리 나라의 통치 아래에 있어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
어쨌거나 본 건은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그 출신지가 어디인지를 불문하고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 또 그런 마음을 우리 나라로서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에 관해서는 식견 있는 분들의 의견 등도 구하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는 일이 없이 오히려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가고 싶다. 우리는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번 표명한다.
덧붙여 말하면 본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 나라에서 소송이 제기돼 있고 또 국제적인 관심도 받고 있으며 정부로서도 앞으로도 민간의 연구를 포함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무라야마 담화] 일본 81대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 발표 (1995년 8월 15일)
지난 대전이 종말을 고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시금 그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되신 내외의 많은 분들을 상기하면 만감에 가슴이 저미는 바입니다.
패전 후 일본은 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울인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영지(英知)와 꾸준한 노력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경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진 지원과 협력에 대하여 다시 한번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또 아시아·태평양 근린제국, 미국, 구주제국과의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우호관계를 구축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워 졌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이 평화의 존귀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근린제국의 국민들과 협조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확고히 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근현대에 있어서 일본과 근린 아시아제국과의 관계에 관한 역사 연구를 지원하고 각 국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는 평화우호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전후 처리문제에 대하여도 일본과 이들 나라와의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저는 앞으로도 성실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패전의 날로부터 5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협조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하여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간요(肝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의지하는 데는 신의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 기념할만한 때에 즈음하여 신의를 시책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 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고이즈미 담화] 일본 88대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발표 (2005년 8월 15일)
저는 종전60년을 맞이함에 있어서, 다시 한번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번영은 전쟁으로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잃으신 많은 분들의 고귀한 희생의 위에 있음을 생각하며 다시는 일본국이 전쟁에의 길로 나가서는 안된다는 결의를 새롭게 하는 바입니다.
지난 대전(大戰)에서는 300만여 동포가 조국을 생각하며 가족을 생각하며 전장에서 산화하거나 전후 머나먼 이국 땅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또한, 일본국은 일찍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함과 더불어 지난 대전에서의 내외의 모든 희생자께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비참한 전쟁의 교훈을 풍화시킴이 없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는 일 없이 평화와 번영에 공헌해 나갈 것을 결의합니다.
전후, 일본국은 국민의 부단한 노력과 많은 나라의 지원에 힘입어 폐허로부터 다시 일어나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을 받아들이고 국제사회에의 복귀에 제일보를 내딛었습니다. 어떠한 문제도 무력이 아닌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입장으로 일관하며 ODA 나 유엔 평화유지활동 등을 통하여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물적 • 인적 양면에서 적극적으로 공헌해 왔습니다.
일본국의 전후 역사는 진정으로 전쟁에의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준 평화의 60년이었습니다.
일본국은 전후 세대가 인구의 70%를 넘고 있습니다. 일본 국민은 한결같이 스스로의 체험이나 평화를 지향하는 교육을 통하여 국제평화를 진심으로 희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청년해외협력대 등의 많은 일본인이 평화와 인도지원을 위해 활약하고 있으며 현지 주민들로부터 신뢰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서도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정도로 경제, 문화 등 폭넓은 분야에서 교류를 깊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사이인 중국이나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제국과는 함께 손을 잡고 이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며 발전을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여 아시아 제국과의 상호이해와 신뢰를 기반으로 미래지향의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국제사회는 현재 개발도상국의 발전이나 빈곤 극복, 지구환경의 보전,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방지, 테러방지 • 근절 등,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복잡하고도 곤란한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일본국은 세계평화에 공헌하기 위해 불전(不戰)의 맹세를 견지하며 유일한 피폭국으로서의 체험이나 전후 60년의 과정에 입각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 나아갈 것입니다.
전후 60년의 길목인 올해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국은 뜻을 같이하는 모든 국가와 함께 인류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을 거듭 표명합니다.
[간 담화] 일본 94대 총리 간 나오토 발표(2010년 8월 10일)
내각총리대신 담화 헤이세이 22년(2010년) 8월 10일
올해는 일한관계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는 해입니다. 백년 전 바로 8월 일한병합조약이 체결되고, 그 후 36년에 이르는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3.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드러났듯이, 정치적·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한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역사에 대하여 성실히 임하고자 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가지고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는 데 솔직하고자 합니다. 아픔을 준 측은 잊기 쉽고, 당한 측은 그것을 쉽게 잊을 수 없는 법입니다. 이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하여, 이에 다시금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이러한 인식 아래 앞으로의 백년을 내다보며 미래지향적인 일한관계를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또 지금까지 실시해온 이른바 재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 봉환 지원과 같은 인도적인 협력을 앞으로도 성실히 실시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통치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해서 들어와 일본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조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된 귀중한 도서를 한국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인도하고자 합니다.
일본과 한국은 2천 년의 활발한 문화교류와 사람들의 왕래를 통해 세계에 자랑할 만한 훌륭한 문화와 전통을 깊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오늘날의 양국교류는 매우 중층적이고 광범하며 다방면에 걸쳐 있어 양국 국민이 서로에게 느끼는 친근감과 우정은 일찍이 유례가 없을 만큼 강해졌습니다. 또한 양국의 경제관계와 인적교류 규모는 국교정상화 이래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고, 서로 절차탁마하면서 그 유대는 지극히 굳건해졌습니다.
일한양국은 지금 이 21세기에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하고 긴밀한 이웃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는 양국관계에 그치지 않고 장래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축도 염두에 둔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세계경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핵군축과 기후변화, 빈곤과 평화구축 같은 범세계적인 과제에 이르기까지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폭넓게 협력하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동반자 관계입니다.
저는 이 큰 역사의 길목에서 일한양국의 유대가 보다 깊고 보다 견고해지기를 강력히 희구하는 동시에, 양국 간의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결심임을 표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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