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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경제

우리가 정의롭다고 믿는것은 사실 정의롭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by 시큼한 파인애플 2022. 5. 19.

도덕관념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고하다보니까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인질극을 하고있는 인질범을 쏴서 죽이는건 결국 한사람의 사망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인질범이 인질을 쏴죽이는거랑 동일한 결과를 낳는것이다.
범죄자의 가치보다 무고한 사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의 잣대에선 둘다 사람이라는 점에서 동등한 가치 아닌가? 공리주의적 가치에 따라 범죄자라고 한들 그사람의 이익은 무시되어야하는가?
그렇게 진압될것을 "감수"해야하는가?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논리이다. 어떤 이유가 있다면 불이익이 감수되어야한다는 정당화 논리가 되는것이니 말이다.
유대인 학살, 아르메니아 학살, 스레브레니차 학살. 학살에는 모두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은 정당화되는가?
평범한 것으로 여겨졌던 정복과 학살은 언제부터 죄악이 되었는가?
서양을 제외한 조선을 포함한 대부분의 문명에서 조은 일반적인 것이었는데 서양의 풍습에 의하여 조혼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것으로 간주되게 된것인가?
결국 현대의 도덕관념이라고 한들 인위적으로 교육된것일뿐 정말 정당한 이유에서 기초하고 있는가?
뉘른베르크 법에 따르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또한 대량학살 아닌가? 총과 가스로 죽이면 학살이고 폭탄으로 죽이면 정의인가? 승자가 전쟁을 끝내기 위한 방안이었다면 정당화되는가? 일본이 중국에서 저지른 신멸작전도 나름대로 전쟁 승리라는 목적이 있었으니 정당화되는가?
연합군의 전쟁범죄는 그저 승자였기때문에 정당화되었는가? 영국과 프랑스같은 옛 제국주의자들은 독일 나치즘보다 더 "정의로운"가? 아일랜드, 동양, 그리고 흑인 식민지인들을 학살하는것은 정당하고 유대인을 죽이는것은 악한 것이었나?
영국과 프랑스의 폭력적인 식민지 확장은 일본이 그들의 식민지를 뺏는것보다 더 "도덕적인가"? 아니면 그저 자신들의 이권이 침해되니 "부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는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현대의 질서는 너무나 위선적인 것으로 바뀐다
미국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이슬람 국가를 침략하여 지옥으로 만들어 놓는것 
그것을 우리는 정의라고 믿는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도덕관념이란 사실 옳은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걸 알수있다
그러니 절대적 도덕관념따위는 존재할수도 없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수단도 변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 한 예로 동성애가 있다. 동성애는 고대 그리스와 일본에선 일반적인 일이었으나 동성애의 엄격한 금지를 주장하는 유대교의 후손인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죄가 되었다.
하지만 다시 현대에 와서는 죄가 아니게 되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성경을 근거로 동성애의 금지를 주장하지만 그들은 성경의 다른 금지사항(동물의 피, 돼지고기, 소와 양의 기름,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짐승, 갈고리발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족을 잡아먹는 날짐승, 그리고 날개도 비늘도 없는 수중 생물을 먹지말라, 특정 식물을 혼합하지말라, 접붙이는 식물을 가까이하지말라 등)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정치적인 이유로 사용한다는 증거이다.
정의롭고 옳은것으로 포장된 것들이 사실 그저 지극히 정치적이고 특정 집단의 이익에만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과거와 현재 불문하고 진실이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그것이 진짜로 정의라고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은 깨닫기 어려운 것일수 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이루어진 전쟁 금지 또한 결국 영국과 프랑스같은 기존 강대국들에 대해 신흥국들이 다시 군사적으로 도전하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을 뿐인것 아닌가? 또한 전쟁에 직접 피해를 입는것은 민중이기때문에 민중에 의한 정부가 전쟁을 거부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이다. 
민중의 이익때문일 뿐이다라는 것은 그게 잘못됐다 뭐다 하는것이 아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옳고 그름이 없는 당위라는 것이다. 태풍이 불어닥치고 지진이 일어나는 것은 그것에 설사 사람이 죽더라도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은 그 대전쟁을 겪지 않았기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것도 당연하다. 그저 국제적 흐름에 따라 동의했을뿐 실제로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다른 사람이 폭력을 휘둘렀을때 내가 그것에 반격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자력으로 해결하려는 사적제재는 법체계와 사회유지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와 국가간의 일일때 그것은 전혀 달라진다.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를 공격했을때 그것에 반격하는 것도 모자라 그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는 가능하다면 그 나라를 완전히 제압하려고 할것이다. 더 나아가 공격하려는 징후를 보이는 나라에 대해 우리는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과 사람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정의롭게 보이는 일이 꼭 실제로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자연법 논거에 따르면 공격받았을때 반격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우리는 공격하려는 방울뱀을 봤을때 그것이 공격해올때까지 기다리진 않을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금지되는 이유는 마찬가지로 정의가 아닌 철저히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일뿐이다.
이것은 나라와 나라간의 관계에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처럼 "정부"가 없는 무정부상태이기 때문이라는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말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사적제재가 용납되지 않는 것은 이와같이 그저 사회유지를 위한 것이지 정의라서가 아니다.

 

도덕 또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뿐.
궁극적으론 선도 악도 없다.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수단일뿐.

 

역사는 철저히 승자에 의해서 쓰여진다. 연합국은 이겼기때문에 선이고 추축국은 졌기때문에 악이다. 하지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잘 생각해보자. 

서구열강은 동남아시아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일본이 이들의 식민지를 공격해서 빼앗는 것은 서양인들이 현지인을 노예화하는 것 다를바가 없고 심지어 더 정의로워보인다. 

현지인으로부터 직접 빼앗은 것도 아니고 어차피 서양인들도 현지인들로부터 빼앗아서 만든 서양의 식민지를 빼앗은 것이니 말이다. 

자기들도 빼앗아놓고 정작 자기들이 빼앗기는 처지가 되니 지랄하는 꼴이다.

물론 자신의 이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저항하는걸 뭐라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도 식민화해놓고 그걸 빼앗는 일본이 더 부도덕한 것으로 주장하니 어이없을 뿐이다. 

 

승전국들로부터 주입받은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진짜 세상을 볼 수 있다. 나는 이와 같은 침략이 옳다 그르다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대가 얼마나 위선으로 만들어져있는지 말하려는 것일 뿐이다.

 

영국인들이 인도와 아일랜드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무슨짓을 했는지, 프랑스인들이 신대륙과 아프리카와 베트남에서 무슨짓을 했는지, 그것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일이다. 

영국인들이 저지른 원주민 학살, 인도인 학살, 아일랜드인 학살 그리고 보어인 학살은 모두 학살이라는 점에서 추축국이 저지른 학살보다 더 경(輕)하지 않다. 

소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연합국은 선하다는 주입된 사상에서 벗어나라. 그들 또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다른 나라를 희생시킨다는 점에서 똑같을 뿐이다. 다른점은 그저 그들이 더 강했다는것.

 

미국은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이슬람 국가에 대한 전쟁을 수행해왔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미국은 지옥의 군대였고 가는 곳마다 지옥으로 만들었다. 시리아, 이라크, 아프간, 베트남. 한국에서의 성공으로 오판한 미국은 다른 곳에서도 이와같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오만은 심각한 내전, 기아, 폭력을 발생시켰다. 

 

우리가 정의롭다고 믿는것은 사실 정의롭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정의라고 믿고 따라야하는가?

사실 그런것은 없다. 모두 자유로운 인간을 사회에 묶어 놓기 위해 만들어진 수단일뿐. 하지만 나는 이게 잘못된 것이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노예의 시선에서 벗어나, 원래 우리가 태어날때 가지고 있었던 자유인으로서의 마음으로 객관적으로 보라는 것이다. 

 

 

우리의 이상과 현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그나마 그럴듯한 이론을 생각해봤다.

 

가치있는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성을 가진 현존재뿐이라고 간주한다.

쾌락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쾌락은 아니다. 동물이 사냥감을 잡을때도, 짝짓기를 할때도 쾌락을 느끼겠지만 그 쾌락은 현존재가 느끼는 쾌락과 명백히 구분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현존재를 증가시키는 것이 가치있는 쾌락을 인지할 수 있는 존재의 총량이 증가하게 하는 것이므로 쾌락의 총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된다

우선 남을 위해서 살 필요는 없다. 전체를 위하라는 것은 자신이 포함된 우리로서의 관점인 것이시지 절대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즉, 내집단의 이익을 추구해야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남을 수단으로 삼고 남을 희생시키므로서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전체의 쾌락에 위배된다.

같은 공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이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공리,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에게까지 이 원리를 적용한다면 이 원리에 얶매이지 않는 우리의 적들과의 경쟁력이 낮아져 우리의 질서를 패배시키고 우리의 이상 세계를 실현할 수 없게하기 때문이다.
환경변화는 상당한 문제지만 권위주의 국가가 존재하는 한 우리가 인류애적 관점에서 호소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자연법 논거에 따라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이익으로 이어진다. 한 사람이 있을때 핸드폰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서 문명을 이루니 한 사람일때는 할수 없는 일이 가능케된다.

물론 전체를 우선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속한 내집단으로서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서 자신도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지 남을 위해 살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까지 희생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도록 이념적으로 주입받았기 때문의 자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하는것이다.

어떤 이들은 집단에 속하면서 집단을 부정하니 존속할 수 없다. 항상 말한 자유주의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화를 이념이 담당했으나 그러한 필수적 이념조차 자유라는 미명아래 희생당했으니 우리는 이제 무엇으로 사회화를 하겠는가?

현대인들은 어른이 되는 사회화를 저해하는 인터넷상의 요소들을 접하다보니 어른이 되서도 몸만큰 애새끼가 되서 남한테 의존만 하는것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가? 아마 당신에게는 '그래야만'할 것이다. 자신의 판단을 자신이 내렸다고 생각해야 자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놀라울정도로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형성되고 결정된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바램에 불과하다 배려는 지능이 높은 존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동물이 남을 배려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동물은 본능대로 움직일뿐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니 고등한 사회를 만들고 서로 배려함으로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수 있는 일이고 이성으로만만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있던 제약들중 사회를 유지하고 함께 살기 위해 있던 제약도 있었다. 그런 것조차 자유라는 명목에서 제거되니 집단이 붕괴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같이 살기 위해 남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질수 있는것이다. 화가나고 공격하고 싶어도 유쾌하게 즐거움으로 승화하는것이다. 즉, 같이 살기위한 도구이다.

 

인간이 문명을 만드는 것은 개미가 군집을 형성하고 물질이 모여 행성을 형성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일이란 단순히 물리법칙에 몸을 맡긴다는 뜻이 아니라 그 상태로 시간이 흘렀을때 높은 확률로 일어나는 당위를 말한다. 이념을 만들고 그것이 인간을 구속하는 것 또한 사실 인간의 의지보다는 크게봤을때 그 또한 자연의 법칙에 의한 것이다. 사회현상은 인간의 의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모였을때 그것은 결국 자연법칙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과 같게 된다. 인간의 의지조차도 해체한다면 신경세포에 의한 작용의 결과이자만 그것이 충분히 복잡한 나머지 자유롭게 보인다. 알고리즘에 의해서 만들어진 봇도 겉으로보기에는 진짜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그것이 충분히 복잡화되어 그 결과물은 결국 자유롭다고 할만큼이 되는 것이다. 입력이 매우 복잡한 함수에 들어가 적절한 분석을 거친후 출력된다면 결국 그것은 자유롭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그것이 설사 물리현상의 거대한 집합이고 그저 원인과 결과만이 존재할 지어도 말이다. (그러니 엄밀하게는 자유의지가 아닌 것이다.) 앞서 말했듯 다시 그러한 자유의지들이 모인다면 그것은 마치 하나의 자연현상처럼 일어나게 된다. 이 자연현상에서 선악을 논하는것은 무의미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원인과 결과만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년들은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왜냐하면 자신들에게 있어 현 체제는 자신의 의지와 권익이 반영되지 않은채 강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중장년들은 기존 질서에 보통 지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계소 그렇게 살아왔으니 변화가 있을때 새로 적응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때문이다. 지금 안정적인데 그들에게 있어서 굳이 변화해야할 유인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이 죽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이유이다. 인간은 생각을 잘 바꾸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살아있다면 경직된 사회가 될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렇게 집단의 행동에는 원인과 결과만이 존재한다.

 

한 사람의 행동은 충분히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은 전혀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본질적인 면에서 자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현상이나 개인의 행동에 관해서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단지 생물학적 현상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성적인 입장에서 단순히 우리 문명의 증진에 관해서만 생각하면 된다. 그것이 생물체의 이익추구라는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만이 철학적으로 고뇌할 수 있고 자신의 이익에 반하여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체다. 그것은 노예로서 그저 종의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강요당하는 다른 생물체와 달리 우리만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여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고도로 조직화된 나머지 남의 불행에도 연민을 느끼는 우리만이 느낄수 있는 고뇌이자 현존재인 우리가 감수해야만하는 책무이다. 즉, 우리는 다른 종의 입장에서도 생각할수 있을만큼 고도로 발달된 존재지만 자기 스스로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감정에 앞서 생각하는 것은 결함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이익을 가져다주는 방향으로 행동을 해야하며 그에따라 당연히 우리의 의사결정 방식 또한 가장 이성적인 결론을 낼수 있는 방법으로 결정되어야한다. 현 세태를 보면 어떤 집단이나 사람이 잘못하면 모두에게 퍼뜨려서 멍석말이를 하고는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우리가 컵을 놓쳤을때 손을 욕하는 것과 같이 무의미한 일이다. 비판은 우리 집단이 이성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건의하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지 우리의 일부를 욕하는 것은 자가면역질환과 같이 스스로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집단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이익의 연장선이기때문이어서지 노예처럼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서 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을 생각해야하는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는 항상 고뇌에서 몸부림쳐야하는 숙명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가장 불행한 동물일지도 모른다. 다른 동물과 달리 스스로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다.생각할 필요

 

공리주의에서 쾌락을 느낄수 있으니 모두 그러해야한다는것은 말이 안된다. 마치 수분가능한 꽃을 모두 수분해주고 모든 비어있는 개밥통에 사료를 부어줘야한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특히 성장기의 교육이 중요하다.

 

선사시대 사람과 현대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신체적 차이? 아니다. 선사시대 아기를 데리고 현대에서 키우면 현대인과 똑같이 된다. 즉, 차이는 바로 정신이다. 성장기에 선사시대같은 후진적 교육을 받으면 선사시대인이나 다름없는 도덕적 가치관과 수준을 가지게되는 것이고 현대인의 교육을 받으면 현대인이 되는것이다 그러니 현대에도 우리 사이에 야만인과 같은 자들이 섞여있는것이다. 

 

선사인과 우리와의 차이점은 지성이다.

논리가 없다면 그런 사람은 선사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이라해서 모두 현존재인 것이 아니다.

즉, 현존재라는 것은 이성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성을 가진 현존재만이 가치가 있고 이성을 알게하여 현존재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정의이다. 

 

우리는 무엇에 의해서 통치를 받아야하는가?

민중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가? 어리석인 민중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결정을 한다고 해도?

나는 민중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것보다 이성에 의해서 통치받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도 이익이라고 생각하기때문에 민주제를 반대한다.

봉건시대 관료 시스템과 군주제의 실패에서 볼 수 있듯 인간에 의존하는 체제는 반드시 그 본래의 목적으로부터 변질될 수밖에 없다. 백날 부패하지말라고 주입해봤자 실제로 부패를 방지하는 체제가 없다면 인간은 반드시 부패할 수밖에 없다. 즉, 인간이 통치하는 것이 아닌 체제가 통치하는 것이어야만한다. 통치자는 자신의 욕구를 우선하는 일반적인 인간과 달리 국민의 화신이자 절대자로서 국가 제일의 이성이어만한다. 그는 통치를 위해 태어나 봉사해야한다. 벌들이 여왕벌을 만들어 군집을 존속시키는 것처럼 통치자는 군집의 생존을 위해서 그 구성원들의 도구로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제일의 이성으로서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존재가 되어야한다. 그들은 분리되어 키워지고 평가를 통해 능력대로 뽑혀서 작은 현의 현령이 되어 일종의 인턴으로서 공직자로서의 업무를 시작해야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 속에서 걸러져 가장 이성적이고 가장 잘 통치하는 자가 통치자가 되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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