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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쟁으로 보는 일본제국의 성립과 패망

by 시큼한 파인애플 2019. 8. 28.

헌법발포약도, 일본제국 헌법이 발포되어 일본제국이 성립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성립된 에도막부는 264년 후인 1867년 대정봉환(쇼군이 천황에게 정권을 반환한다는 것이나 바로 에도막부가 무너진것은 아니다.)을 겪고 1년후 내전인 무진전쟁(戊辰戦争,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사용해서 보신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으로 인해 멸망한다. (에도막부의 멸망과정은 따로 다루기로 한다.)이후 일본제국이 성립되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근대화 개혁 행위가 발생하여 동양에서 선도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한다.

 

청일전쟁 당시 교전

비슷한시기, 청나라에서는 양무운동과 변법자강운동등의 근대화 시도를 하지만 일본과 청나라의 전쟁인 청일전쟁을 통해 한계를 여실히 들어냈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청나라는 타이완 섬을 일본에게 넘김과 동시에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한다.

 

러일전쟁 풍자화, 그림에서 보듯 일본이 이길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인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하며 조선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인정받고 되고(이때 러시아에서

러시아 혁명을 촉발시킨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나 내정이 혼란하여 전쟁을 수행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혁명으로 인해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러시아가 공산화되었다.)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조선 지배에 대한 묵인을 확인한다. 그리고 결국 조선을 합병하기에 이른다.(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일본의 침략행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시 세계정세가 먹거나 먹히거나인 상황이기도 했다.)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영토

1931년 만주를 침략해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워 병참기지화한다.(만주사변) 그로부터 몇년후 일본은 중국(장제스의 중화민국을 말한다.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성립되었다.)에 대한 침략전쟁을 시작한다. (중일전쟁, 1937년~1945년) 이 전쟁은 일개 연대장이었던 무타구치 렌야의 명령으로 발발하였다. (당시 일본도 어차피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었다. 그래서 협상을 통해 끝내려 하지 않았다.)

 

교전중인 군인들 

일본군의 막강한 군사력에 중화민국군은 당해내지 못했다. 상하이가 함락되었고 수도였던 난징까지 함락되었다. (난징에서 일본군은 학살을 행하는데 이 사건을 난징대학살이라고 한다. 10만명 이상의 시민이 학살당했다.)

 

1939년의 판도

일본군은 인도차이나에 도달하는데 진군을 멈추지 않고 인도차이나까지 침략한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는 나치독일의 괴뢰정부인 비시 프랑스와의 협의로 진출이 허용됬다.) 이러한 광적인 침략전쟁을 지속하던 일본은 국제사회의 압력과 제재를 받게된다. 1941년에 미국(America), 영국(Britain), 중국(China), 네덜란드(Dutch) 이 4개국은 일본에 전략물자수출(석유도 포함된다.)을 금지하는 ABCD 포위망을 형성했다. 당시 일본 전체 석유 수입의 80% 이상을 미국에서 수입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는 치명적이었다. 침략전쟁을 하고있던 중이라 석유가 더 필요한 상황이므로 미국의 석유수출 금지는 일본에게 치명타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을 벌이는데 일본이 침략전쟁을 중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협상이 결렬된다. 

 

일본군의 폭격으로 인해 격침되는 미국 전함 애리조나

일본은 전쟁을 계속하기 위한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서 경제봉쇄를 풀어야 한다는 결론을 냈고(때리면 경제제재를 풀어줄거라는 오판을 했다.) 미국의 태평양 함대의 기지인 진주만에 공격을 감행한다. 이로인해 미국과의 전쟁이 발발하여 일본제국의 패망을 야기하게 된다.

 

당시 일본과 미국의 국력비교, GNP는 국민총생산을 말한다.

미국은 일본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다. 영토와 인구면에서도 밀리며 농업국가였다가 막 근대화를 한 일본과 달리 미국은 당시에도 강력한 공업력을 가진 국가였다. 이러한 국력을 통해 미국은 말그대로 병기를 마구 찍어내기 시작했고 결국 일본은 패배하게 된다. 결말은 뒤로하고 한편 진주만 공격을 통해 미국과의 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미얀마, 태국, 필리핀,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 등등)을 공격하여 점령하게 된다. 

 

 

전쟁의 판도

무패로 진격하던 일본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대패를 시작으로 (항공모함 4척을 상실했다.) 연패를 이어가 수세에 몰리게 된다. 전쟁이 진행되던중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항공전력이 궤멸당하고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 연합함대의 붕괴로 일본은 패전을 코앞에 두게 되었다.

 

함락되는 베를린

한편 유럽에서는 일본의 동맹이었던 나치독일과 이탈리아가 패전하여 유럽에서의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하게 된다. 일본은 재해권과 재공권을 모두 상실하고 (실질적으로 재해권을 가진 해역은 일본 본토 주위 밖에 없었다.) 넓은 점령지에서 주요 도시 몇개와 그 도시들을 연결하는 철로만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게 되었다. 일본의 국력으로 저 넓은 점령지를 통제하는것은 불가능했다. 일본군의 병력밀도는 매우 낮아서 제대로 된 전쟁수행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비율로 보면 서울만한 면적을 1개의 중대가 맡는 수준이다. 병력의 부족현상으로 일본군은 매우 이상한 전선을 형성했는데 도시와 그것을 연결하는 철도를 중심으로한 전선이었다. 점령지를 통솔할 병력조차 부족했던 일본군은 총체적 붕괴를 직면하게 된다.

 

신멸작전으로 학살당한 주민들

그래서 그들은 이상한 전쟁방식을 택했는데 마을에 쳐들어가서 모두 불살라버리는 작전이였다. 이를 신멸작전이라고 하는데 엄청난 반발을 부르곤 했다. 참고로 일본군의 사망자의 60%는 보급을 받지못해 아사한 인원일 정도였다. 이것이 일본군의 현실이었다.

 

종전 직전의 판도

전쟁이 끝날때까지 일본군은 꽤 큰 영토를 점령한것처럼 보이지만 껍대기에 불과했다. 일본은 넓은 점령지를 실질적으로 통제할 능력도 없었으며 전략적 가치가 없는 영토였다. 그래서 미군은 징검다리 작전이라는 전술을 채택했다. 이는 필요한 섬이 아니면 그냥 고립시켜놓고 보급로만 끊어서 버틸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 해군이 이미 궤멸되어 재해권을 미군이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또한 일본은 저 넓은 전선을 보급할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단한 전함에 가벼운 전투기가 충돌하는것은 무의미했다. 카미카제로 영국군 전함에 충돌하여 모기자국처럼 흔적이 남은 사진

패전이 가까워지자 일본군은 카미카제라고 불리는 자살공격을 했는데 단단한 전함에 전투기를 충돌시키는 행위였다. 이러한 자살공격은 귀중한 파일럿과 전투기를 소모시킬뿐 별다른 전과를 내지 못했다. 패전이 확실해졌음에도 일본 군부는 계속 항복을 거부하였고 희생을 계속 강요하였다. 그들은 1억 총옥쇄(옥쇄란 죽을때까지 싸우는것을 말한다. 참고로 저당시 1억이라는 인구는 일본이 점령한 점령지의 인구까지 모두 합하면 나오는 수치이다.)를 운운하며 항복을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의 전쟁의지를 꺾어 더이상의 희생을 막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한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하기로 결정한다. (항복하지 않을시 본토에 엄청난 병력을 상륙시켜 전역을 점령하는 "몰락작전"이 준비되있었으며 실행됬다면 본토가 전쟁터가 되어 희생자가 훨신 많아졌을 것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시에 TNT 18kt 위력의 원자폭탄(폭탄명 리틀보이)이 투하되었다.

 

히로시마시에 투하된 원자폭탄

그러나 이 참혹한 공격을 받고 일본군부가 보인 반응은 현실부정이었다. 8월 7일에 히로시마에 도착하여 현장을 조사하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이 원자폭탄임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군부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히로시마안의 보고체계도 증발하여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린 점도 있다.)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예정대로 두번째 폭격을 실시한다. 8월 9일 나가사키시에 TNT 21kt 위력의 원자폭탄(폭탄명 팻맨)이 투하되었다.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

결국 일본은 더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는걸을 인지하였다. 결국 일본은 1945년 8월 14일 항복의사를 연합국에 전달하고 8월 15일 천황의 조서 낭독 녹음본을 방송하는것으로 항복선언을 한다. 이로써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하였다. 이후 일본은 연합국이 점령하여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의 통치를 받게 된다. 일본제국헌법은 효력이 상실되었고 현대 일본의 헌법이 새로 쓰여졌다. 일본이 점령한 점령지는 모두 연합국의 통치을 받은 후 독립하게 된다.

 

결론) 일본은 미국과 싸울 능력따위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지만 미국에게 큰 피해를 입히면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할수 있을것이라는 낙관론에 빠져 전쟁을 일으키고 패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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