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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와 도시(2) - 이스탄불

by 시큼한 파인애플 2019. 12. 30.

이스탄불의 위치

 

 지도만 봐도 지정학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도시임이 느껴지는 이 도시는 로마제국 시대부터 현대까지 수차례 주인이 바뀌고 이름또한 바뀐 역사적인 도시이다. 비잔티움(그리스), 콘스탄티노폴리스(동로마), 코스탄티니예(오스만), 이스탄불(터키) 순으로 이름이 변했다.

 

 

도시의 성립

 

로마제국의 최대강역

 

고대 그리스는 많은 식민지를 개척했는데 이 도시도 그중 하나였다.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와는 다른 개념의 식민지이다.) BC 667년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였던 "메가라"는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그들의 왕 비잔타스의 이름을 따 비잔티온이라고 명명했다. 고대 로마는 이 도시를 라틴어이름인 비잔티움이라고 불렀다.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하여 이 도시또한 로마의 영토가 되었다. 로마제국은 그후 엄청난 영토를 정복하며 당대 최강국이 되었다. 중요한것은 다른 제국처럼 금세 없어진것이 아닌 이 거대한 제국이 오랜기간 유지됬다는 점이다. 그래서 로마는 전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로마제국의 수도가 되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수복한 로마제국의 영토

 

콘스탄티누스 1세는 분열된 로마를 재통일하고 330년 이 도시를 로마제국의 수도로 선포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따 이 도시를 콘스탄티노폴라스라고 개칭한다. 그후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되자 서로마는 게르만족에게 망하고 동로마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래서 동로마제국이 비잔티움 제국이라고도 불린다.) 동로마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기 로마제국의 영토를 많이 회복하고 사실상의 로마제국이 되어(사실 동로마는 계속 로마제국이었다. 구별을 위해 동로마라고 부르는것일뿐 동로마는 로마제국이며 동로마의 황제또한 로마제국의 황제로 분류된다.) 콘스탄티노폴라스는 명실상부한 로마제국의 수도로 거듭난다.

 

 

 

오스만에게 정복당하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지도
노란색이 당시 콘스탄티노플이고 빨간색이 금각만(골든혼)이다.

 

비잔티움 제국은 계속 쇠퇴하여 오스만 제국을 포함한 여려 국가들에게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했다. 그러나 끝까지 콘스탄티노플은 포기하지 않았는데 그러는 콘스탄티노플은 수차례의 공격을 받게된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몇겹의 성벽으로 둘러쌓인 난공불락의 도시였다. 하지만 영원한 도시는 없듯이 오스만 제국의 마흐메트 2세가 이끄는 15만 대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은 항전하였으나 결국 난공불락의 도시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무너졌다. 로마제국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전사했으며 2200여년을 이어져온 대제국 로마는 마침내 멸망했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어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453년을 많은 학자들은 중세가 종말하고 근세가 시작된 해라고 본다. 중세기간 함락되지 않았던 재래식 성벽의 최강자 콘스탄티노폴리스이 공성포에 의해 무너졌으며 이는 성과 기사를 중심으로 하는 중세의 전투의 몰락을 의미한다 또한 오스만을 피해 로마-그리스의 학자와 연구결과가 유럽으로 넘어가 르네상스의 계기가 되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발판삼에 오스만제국은 발칸반도를 정복하게된다.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에게 떨어져 동 지중해가 오스만에게 장악당해 중계무역으로 많은 이익을 창출하던 제노바와 베니치아가 몰락하고 동방에서 가져오던 물자의 가격이 폭등하여 유럽국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항로를 찾게 만들었고 신대륙 발견과 대서양 무역의 대흥에 영향을 주게 된다. 오스만은 원래 이 도시를 코스탄티니예(콘스탄티노플의 오스만어 이름)라고 부르고 있었고 이제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여담으로 그리스는 아직도 이 도시를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이 도시는 고대부터 그리스 문명권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이 도시를 수복하지 못한것에 분해하기도 한다. 오스만 술탄들은 이 도시를 정복한후 자신에게 카이세리 룸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는데 로마황제라는 뜻의 터키어이다. 

 

 

 

현대 이스탄불

 

에게해와 주변지리

 오스만이 이스탄불을 정복한후 더이상 이 도시에서 공방전은 일어나지 않게된다. 1차 발칸전쟁 당시 불가리아군이 가까이까지 진군한적은 있으나 이스탄불이 공격당하지는 않았다. 동맹국에 가담한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협상국은 오스만의 영토들을 자신들이 분할하여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리스(그리스 독립전쟁 당시 독립하였다.)는 승전국이라서 이스탄불까지 먹으려고 진군했으나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에게 패하고 영국이 개입하여 둘을 중재한다. 영국은 터키에게 동트라키아 지방(이스탄불을 포함한 유럽부분에 있는 터키영토) 또는 에게해의 섬들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고 아타튀르크는 동트라키아를 선택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에게해의 섬들은 모두 그리스의 영토이다.

 

동 트라키아(파란색)

 

 

오스만제국이 멸망하고 튀르크 네셔널리즘 세력이었던 아타튀르크는 터키 공화국을 출범시킨다. 수도는 앙카라로 천도하였고 코스탄티니예라는 도시의 이름은 이스탄불로 바꾸었다.(원래 이스탄불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현재 이스탄불의 인구는 1500만이고 터키 전체의 인구는 8000만이다. 이스탄불은 터키의 최대도시이며 인구가 수도 앙카라의 3배 가까이 된다.(앙카라 인구 540만) 

 

이스탄불은 지정학적 중요성때문에 많은 수난을 겪으며 역사와 함께해 왔다. 이스탄불은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보스보루스 해협에 있다. 이 해협에 통과허가를 내주는 함선은 순양함까지이기 때문에 러시아는 전함을 순양함이라고 하는 눈가리고 아웅하기를 하기도 한다.

 

러시아가 순양함이라고 주장하는 키로프급 순양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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